송암교회에서 함석헌기념관까지… 서울 강북 지역 기독교·근대유적 답사… 신앙의 선배들, 독립·민주화·인권 운동에도 헌신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안내로
함태영 목사와 인연 깊은 송암교회
문익환통일의집·김수영문학관
함석헌기념관 등 방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가 마련한 기독교·근대유적 답사 참가자들이 13일 서울 강북구 문익환통일의집 뒤뜰에서 문익환 목사의 얼굴 그림(오른쪽)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13일 오전 서울경전철 우이신설선 화계역 2번 출구에 20여명이 모여 있었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연구소·이사장 이덕주)가 마련한 서울 강북·도봉 지역의 기독교 및 근대유적 답사 참가자들이었다.

연구소가 준비한 49번째 답사는 강북구 송암교회(김정곤 목사)에서 출발해 도봉구 함석헌기념관까지 이어졌다. 일부 구간은 버스를 이용했지만 참가자들은 28도 넘는 초여름 날씨 속에서 걷고 또 걸었다.

답사를 인솔한 홍승표 아펜젤러인우교회 목사는 “서울 강북과 도봉구 일대에는 유독 신앙적 지조를 지키고 살았던 신앙 선배들의 흔적이 많다”고 귀띔했다. 한신대 신학대학원과 문익환통일의집, 덕성여자대학교, 김수영문학관, 전태일 집터, 창동역사문화공원 등을 차례대로 방문했는데, 한나절 동안 디딘 걸음 수만 2만보에 가까웠다.

첫 방문지는 1962년 6월 설립한 송암교회(김정곤 목사)였다. 한국기독교장로회를 상징하는 교회로 한신대의 기틀을 닦은 송암 함태영(1873~1964) 목사와의 인연도 깊다. 교회가 있던 자리에 함태영기념관이 있었고 이 자리에서 예배를 드리면서 그의 호인 ‘송암’이 교회 이름이 됐다. 법관이던 함 목사는 1919년 3·1만세운동에도 깊이 관여한 민족 지도자였다. 1922년 평양신학교 졸업 후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1951년 한신대 학장을 지냈고 이듬해 부통령이 됐다.

답사단은 한신대에서 900m 떨어진 문익환통일의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1966년 지어진 이 집은 문익환 목사가 별세할 때까지 28년 동안 머문 곳이다. 197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의 밑그림을 그린 역사적인 장소로 알려져 있다.

2018년 6월 ‘문익환통일의집’으로 개관했고 서울미래유산 가운데 하나다. 내부에는 그의 유품과 옥중편지를 비롯해 어둡던 시절 한줄기 빛과 같았던 그의 메시지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한평생 통일운동에 헌신했던 문 목사의 흔적이었다.

답사단은 동요 ‘반달’을 작사·작곡한 윤극영 가옥과 전쟁에 참전했다가 실명한 참전용사들이 마을 입구를 지켰던 수유동교회를 거쳐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로 덕성여대를 설립한 차미리사(1879~1955) 선생 묘도 찾았다. 아쉽게도 이날 묘소 입구가 닫혀 있어 가까이 갈 수는 없었다.

마지막 답사지인 함석헌(1901~1989) 기념관에는 함 선생의 책과 저서, 생활용품 400여점이 전시돼 있었다. 험난했던 근현대 격동기를 관통하면서 독립운동과 민주화·인권운동에 헌신했던 그가 타계 전 7년 정도 거주한 곳이다. 유리온실을 활용한 쉼터와 게스트하우스도 눈에 띄었다.

강원도 원주에서 온 류계순(70) 삼천감리교회 권사는 “오늘 답사를 통해 또 새로운 교회사의 현장을 알게 돼 큰 보람을 느꼈다. 이 코스를 지인들과 함께 다시 오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장창일 기자 jangc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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