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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공화를 생각한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몇 년 전부터 헌법을 종종 들여다보곤 한다. 헌법 정신을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이거나 다른 해석을 유도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위정자들 때문이다. 3·1운동, 임시정부, 4·19 정신을 뿌리로 민주 자유 권리 기회균등 평화 통일 행복 등을 추구하는 나라를 세우는 법을 만들었다,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일반인의 시각에서 다른 해석의 여지가 없는 내용을 다시 읽어보는 것도, 이렇게 인용하는 것도 이젠 좀 지친다.

그래도 다른 의미를 찾아낼 수도 있을까 살펴보다 한 단어를 발견했다. ‘공화’다.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지키기 위해 수십 년을 몰입해서 혹은 너무 당연해서 또는 민주공화국으로 묶여서 간과한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북한이 그들의 정치체제를 인민공화국이라면서 스스로를 공화국이라고 줄여 부르기도 해 사용과 의미 부여에 인색했는지도 모르겠다. 공화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여러 사람이 공동으로 일을 함이라고 정의한다. 정치 분야에서는 두 사람 이상이 공동 화합하여 정무(政務)를 시행하는 일을 가리킨다.

철학자와 정치학자들은 공화주의의 핵심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자유 법치 공동선(共同善)이다. 공화주의에서의 자유는 주종(主從) 관계가 없는,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고 한다. 루소는 공화정에 대해 “자유로운 인민은 복종하지만 사람에게 속하지 않으며, 지도자는 두지만 주인은 두지 않는다. 자유로운 인민은 오직 법에만 복종하며 타인에게 예종하도록 강제될 수는 없는데, 이것은 법의 힘 때문”이라고 했다. 법치는 법의 공평한 적용을 전제한다. 자본과 권력을 활용해 법을 유리한 대로 이용하면 법치라고 볼 수 없다.

정책 실행의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해서 국민이나 해당 직역의 일정한 동의 없이 자의적, 일방적으로 어떤 정책을 시행하면 공화의 개념에 어긋나는 일이다. 특히 사면은 엄격한 잣대로 화합을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사면받았다고 해서 저지른 죄까지 없어진 건 아니다.

민주라는 개념이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공화는 공동체의 조화와 화합을 추구한다. 공화의 정의에 있는 ‘여러 사람이나 두 사람 이상이 공동으로’라는 조건에는 생각이나 지향점이 다른 사람을 포함한다. 같은 편끼리만 일을 도모하지 말고 다른 편과 논의하고 합의해 공동선을 설정하고 실천하라는 의미다. 머리 좋은 한 사람이 이끄는 것보다 조금 부족한 여러 사람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것이 훨씬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아일랜드의 정치철학자로 현대 공화주의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인 필립 노엘 페팃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석좌교수는 ‘신공화주의-비지배 자유와 공화주의 정부’라는 저서에서 “(공화는) 견제적 민주주의를 옹호한다. 시민 중 그 어떤 집단, 정부기관 중 그 어떤 당국자도 정책을 수립하는 데 지배적 통제를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조화와 합의, 화합을 추구하면 자연스레 일인 또는 일당 독주, 기득권의 독점 등을 막는 효과도 생긴다. 민주와 공화를 제대로 묶어야 우리 헌법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다.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품격을 갖추고 공화를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해보려고 한다. 염원과 달리 거짓 이력이나 부당한 재산 증식, 파렴치한 범죄 전과나 의혹, 사면 전력을 가진 후보들이 많다. 개인의 이익에만 골몰했던 사람들이다. 작은 권력이라도 갖게 되면 민주와 공화라는 가치를 상실해버리는 인사도 당연히 제외다. 그러면 남는 후보가 없어 비례대표 투표만 해야 하나. 오호, 통재라.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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