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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고차원의 도전 과제 된 한·러 관계

박노벽 전 주러시아 대사


최근 치러진 러시아 대통령 선거 결과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87%의 득표율로 승리해 6년 임기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 그가 밝힌 국정 방향은 인구 감소 등 여러 국내 문제 해결,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 지속,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등 서방과의 대결, 중국과의 협력 심화로 요약된다.

하지만 대선 승리 발표 불과 닷새 만에 모스크바 외곽 공연장에서 300여명이 살상당하는 대형 테러가 발생했다. 이번 테러 공격은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모스크바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푸틴 대통령에게 심대한 정치적 타격이다. 테러 가능성에 대해 미국이 러시아 정보기관에 관련 정보를 줬음에도 푸틴은 미국에 대한 깊은 불신으로 이를 협박이며 불안정을 조장하려는 의도라고 폄하했다고 한다.

앞으로 테러범의 배후 조사 결과를 두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미국과 대립할 소지가 있다. 크렘린이 이번 테러 문제를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이라는 틀 내에 놓고 대처하려 한다면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격 확대와 미국 등 서방과의 대결로 관계가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푸틴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주석과 연대해 아시아에서 미국 주도 질서를 변경해 ‘다극 강대국 체제’라는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푸틴 대통령은 오는 5월 대통령 취임식 직후 중국 방문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제한 없는 동반자 관계’라는 표현과 달리 러·중 관계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예컨대 중국의 지난해 대외무역 규모를 보면 미국과 5700억 달러, 유럽연합과 7100억 달러지만 러시아와는 2400억 달러에 불과하다. 중국은 러시아와 외교, 경제 등에서 유대 관계를 이어가겠지만 서방과의 관계를 전면적 대결로 전환할 가능성은 없다. 더 나아가 러·중 간의 역사적 불신, 러시아에 상실한 과거 영토 문제에 대한 중국의 불만은 여전히 잠복해 있다.

러시아는 자국 이익과 정세 변화에 따라 대외관계 방향을 신속히 전환시키는 경향이 있다. 북·러 관계도 그중 하나다. 즉 지난 30년 동안 양국 관계는 침체에 빠져 있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지난해 9월 이후 급속도로 관계 개선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양측이 교환할 만한 실질적인 거래 분야는 북한 노동력 등에 국한돼 있다. 다만 북·러 군사 분야 협력은 한반도 정세 안정의 불안요인이 됐다.

한·러 관계는 1990년대 냉전 종식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여파로 탈냉전기는 종식되고 상호 제재로 양국은 비우호국 관계로 전환됐다. 한국은 북·러 군사 거래를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으로 비판해 왔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우리의 미·일 안보협력 강화에 대응해 한반도 역학관계의 균형 유지를 명분으로 북한을 두둔하며 북한과 다방면의 협력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크렘린이 우크라이나 전쟁 지속 추진을 최대한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한 한·러 관계는 상황 개선보다는 악화 방지가 필요하다.

특히 전쟁 중이라는 제약이 있겠지만 고위급 대화와 협의를 통해 양국의 이해 기반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민간 교류를 통해 상호 존중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 정세는 시시각각 변화하며 테러와 같이 예기치 않은 변수가 등장하면서 복잡하게 진화하고 있다.

한반도 안정과 안보 유지는 한·미 동맹 차원에서 협력이 필요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도 병행해야 하며, 지정학적으로 연계된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해 주도적 역량을 발휘해야 하는 고차원의 도전이다. 세계 각지에서 분출하는 분쟁에 대처하느라 외교안보 자원 소모가 심한 미국의 부담을 덜어주는 역할도 생각해야 한다.

박노벽 전 주러시아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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