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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폭에 담은 복음, 빛으로 감동을 전하다

입력 : 2024-03-23 03:00/수정 : 2024-03-24 15:32
예술 작품엔 작가의 심상(心象)이 메타포(은유)로 담긴다. 이는 때로 새벽녘 물안개처럼 또렷하지 않은 시선으로 감동을 배가시키기도, 때로는 더없이 또렷하고 명확한 시선으로 작품에 담긴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특히 크리스천 작가들이 보여주는 작품 세계엔 삶을 관통하는 은혜를 모티브로 다양한 이야기가 수놓아진다. 자연이나 풍경 또는 하나의 형상 등을 통해 작가가 받은 영감을 표현해내는 작품들이 다수인 기독 미술계에 최근 눈에 띄는 흐름이 포착됐다. ‘성화(聖畵)’가 감동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성화들은 작가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간접적 표현을 넘어 성경의 내용을 가장 직관적으로 전달하는 소재와 화법, 질감 등을 창의적으로 접목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성화를 창작해내는가 하면 오직 ‘성화 외길’을 걸으며 성화 본연의 작품 세계를 선보이기도 한다. 캔버스 앞에서 묵묵히 복음을 확장해가는 성화작가 2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독창적인 시도로 한국적 양식 개척한 변영혜 작가

경계를 넘어선 성화로의 여정

변영혜 작가가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갤러리1(원)에서 1000호 크기의 초대형 작품 ‘버닝 부시(Burning bush, 타오르는 덤불)’의 의미와 화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갤러리 입구에 들어서자 ‘천국의 계단’이 떠오를 법한 설치 예술 작품이 한눈에 들어왔다. 형 에서를 피해 도망치다 광야에서 돌베개에 머리를 누인 채 잠을 청한 야곱이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뒤, 베개로 삼았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으며 그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던 성경 이야기(창 28:10~11)를 계단 위에 표현한 변영혜 작가의 작품이다.

변 작가가 창세가 28장 내용을 바탕으로 제작한 작품 ‘벧엘’. 신석현 포토그래퍼

독창적인 성화 양식을 선보이며 ‘한국의 미켈란젤로’라 불리는 변 작가의 작품들은 미국 하버드대, 영국 웨슬리교회, 러시아 주재 대한민국대사관 등에 소장돼 있다. 그의 작품 세계엔 특별한 서사가 있다. 서울대 미대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뒤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성화를 그려오면서 작품에 활용되는 소재와 화풍, 질감에 경계를 뛰어넘는 시도를 끊임없이 해왔다. 오는 25일까지 진행되는 ‘현대 성화전: 벧엘로 올라가다(Go up to Bethel)’의 대표작인 ‘벧엘’도 그중 하나다.

“한지를 배접해 얇으면서도 질긴 배경을 만들고 돌기둥과 하늘로 향하는 사닥다리를 아크릴 물감으로 칠한 뒤 흙가루를 사용해 거친 질감을 표현했습니다. 같은 작품을 100호 크기로 더 크게 만들 땐 황토를 굳혀 돌덩이를 만들어 프레스코 벽화를 떼어낸 조형물처럼 구현해냈지요.”

갤러리 입구 오른편엔 가로 5m40㎝, 세로 2m30㎝(1000호)에 달하는 초대형 벽화가 시선을 압도한다. 이사야 43장 2절이 기록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임재를 형상화한 작품 ‘버닝 부시(Burning Bush·타오르는 덤불)’이다. 변 작가는 알루미늄판에 돌가루, 화산재 가루, 황토가루를 반죽해 황토벽을 만든 뒤 그 위에 모르타르를 발라 거대한 회벽을 만들었다. 가시 면류관을 쓴 채 고초를 당하는 예수님의 얼굴 형상, 우리를 가슴으로 품고 보호해주시는 두 날개, 인생의 시험과 고난을 통과해나가는 모습을 묘사한 불붙은 가시 떨기나무가 거대한 벽을 가득 채운다.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갤러리에 전시된 작품들엔 언약궤 지성소 분향단 초원 양떼 등 성경에 등장하는 지형지물과 오브제가 복음 담긴 메시지로 캔버스에 담겼다. 변 작가는 “주제에 따라 수묵담채화 판화 서양화 프레스코화 등 다양한 기법이 작품에 접목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작품을 바라보는 이들에게 직관적으로 성경의 메시지가 전달되도록 표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성소에 들어가는 제사장이 물두멍(물을 담아두는 그릇)에서 손을 씻듯, 본격적인 작업에 앞서 화구를 깨끗이 씻은 뒤 빈 캔버스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게 34년째 이어온 변 작가의 루틴이다. 그는 “세계관을 바꿔놓는 한 편의 설교처럼 삶의 시선을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바꾸는 성화를 끊임없이 그리는 작가가 되는 게 소명”이라며 “앞으로 오순절 초막절 유월절 등 성경의 7대 절기를 성화에 담아 관객들을 만날 것”이라고 전했다.

44년째 예수의 생애 그리는 이요한 작가

성화 외길, 그 길목에서 주를 그리다

이요한 작가가 지난 12일 서울 동대문구 작업실에서 작품 ‘나사로의 부활(요 11:40)’의 의미를 소개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달란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음을 전하는 게 제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것이 살아있는 한 힘이 닿는 데까지 성화를 그리는 이윱니다.”

칠순의 화가는 캔버스에 시선을 꽃은 채 유화물감을 한 층 한 층 켜켜이 쌓아 올렸다. 오랜 작업 시간을 방증하듯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그의 작업실엔 테레핀유(소나무에서 얻는 무색의 정유)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올해로 44년째 성화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담아내고 있는 이요한 작가를 지난 12일 만났다.

이 작가는 1979년 네덜란드 화가 얀 반 에이크의 성화에 감명을 받고 성화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40일에서 50일 정도다. 그는 “화장실 가는 것, 식사 시간을 제외하곤 보통 하루 9시간을 쉬지 않고 붓칠에만 전념한다”고 했다.

이 작가의 작품 ‘유다의 배반(막 14:44)’. 신석현 포토그래퍼

그가 성화를 대할 때 가장 강조하는 건 ‘정직함’이다. 이 작가는 “성화는 인물과 풍경, 사물을 성경에 나와 있는 대로 고증에 따라 그려내야 하는 굉장히 고된 작업”이라며 “그런데도 성화를 고집하는 이유는 성경책을 10번 읽는 것보다 작품을 한 번 대면하는 것이 더 쉽게 복음을 이해하고 오래 잔상에 남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힘들다고 피하거나 좋을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직하게 성경대로 그려낼 때 사람들도 감동과 은혜를 받는다”고 덧붙였다.

연필 펜 수채 석고 점토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할 줄 아는 그가 고집하는 기법은 유화이다. 이 작가는 “유화물감을 활용한 오일 페인팅은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지만 이만큼 다채롭고 오묘한 색감과 깊이를 표현할 수 있는 재료는 없다”며 “임파스토(많은 양의 물감을 두텁게 바르는 기법)를 통해 흉터는 물론 나무 바위 절벽 등 질감을 생동감 있게 살려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한국에 성서박물관을 세우는 것이다. 그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도 무료로 관람할 수 있도록 박물관을 개방해 그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미술 작품을 만나게 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또 최근 성화를 통해 작품을 전시해나가는 흐름에 대해 “성서박물관을 꿈꾸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에 성화작가가 더 많이 생기고 앞으로도 다양한 분야의 K컬처처럼 K성서 미술의 영역이 확장되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지난해엔 44년 성화작가 인생에 큰 고난을 마주하기도 했다. 건강검진에서 혈당 수치가 400이 넘었다는 진단을 받게 된 것. 이 작가는 “의사로부터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수치’란 설명을 들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남은 인생을 모두 하나님께 바치자는 마음으로 더 열심히 작품에 매진하고 있다”며 웃어 보였다.

백석대와 협성대 등에서 교수직 제안도 받았지만 모두 거절했다. 그는 “내게는 돈이나 명예보다 성화작가로서의 사명감이 더 크다”며 “성서박물관을 꿈꾸며 내게 남은 시간을 모두 작품에 할애하고 싶다”고 했다.

이 작가는 25년 만에 열리는 전시회를 앞두고 있다. 25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서울 동대문구청 아트갤러리에서 진행되는 자신의 성화전이다. 그는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 등 내용을 담은 작품 350여점 중 21점을 선별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주제로 전시할 예정”이라며 캔버스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최기영 조승현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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