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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반공 성지, 공연예술 성지로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남산공연예술벨트 조성 방안 중 눈길을 끄는 것은 자유센터를 20년간 장기임차해 국립공연예술창작센터(가칭)로 만든다는 것이다. 문체부는 건물 총 2618평과 대지 1720평을 활용해 2026년까지 연습실, 공연장, 무대장치 분류센터로 만드는 한편 다양한 분야의 공연단체에 제공해 공연예술산업의 거점으로 마련할 예정이다.

남산 국립극장 건너편에 자리 잡은 자유센터는 5·16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이 처음으로 추진한 국가 건축 프로젝트였다. 1962년 5월 서울에서 개최된 제2차 아시아반공연맹 임시총회에서 박정희 정권은 한국을 아시아 반공의 성지로 만들겠다면서 반공 지도자 양성, 게릴라 요원 훈련, 이론 체계 정립 등을 담당하는 아시아반공센터 설립을 추인받았다. 당시 냉전 상황에서 한국의 위상을 확인받는 자리였지만 군사쿠데타에 따른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미국의 지지를 받기 위한 목적이 컸다. 그리고 아시아반공센터의 이름은 공산주의 진영에 맞서는 자유주의를 뜻하는 ‘자유센터’로 정해졌다.

자유센터 건립은 관변단체인 한국반공연맹(지금의 한국자유총연맹)이 맡았다. 당시 박정희 정권은 한국반공연맹에 남산의 노른자 땅인 한남동, 장충동 일대를 국유지로 정한 뒤 무상으로 제공했다. 그리고 그해 9월 착공해 15개월 만인 1964년 3월 준공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다. 정권의 신임을 받던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자유센터는 하늘로 말려 올라간 압도적인 지붕, 거대한 수직의 열주들, 대중집회가 가능한 대규모 광장 등이 결합해 ‘반공’ 이데올로기를 모시는 콘크리트 신전으로 만들어졌다. 자유센터와 관련해 건축가 김수근은 “실용성과 예술성, 기념성이 자유, 반공이란 시대적 성격과 그 요구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그 과제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그런데 1인당 국민소득이 87달러밖에 되지 않던 시절이었던 만큼 대규모 국가 건축 프로젝트를 수행하기엔 자금이 부족했다. 한국반공연맹도 자유센터 건립 모금을 위해 적극적으로 국민 동원에 나섰다. 박정희 정권은 기업인에게 지원을 받는 한편 공무원, 회사원 등의 봉급 일부를 떼는 방식으로 모금했다. 여기에 극장 관람료와 고궁 입장료 안에도 자유센터 건립 기금이 포함됐다. 엄밀히 말하면 ‘자발적 기부’라는 이름 아래 모금했다. 국민의 자발적 동의의 기제로서 반공주의를 활용한 셈이다. 그리고 박정희 정권은 결과적으로 쿠데타 정권이란 한계를 극복하고 정당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원래 본관에 해당하는 자유센터 외에 숙소인 국제자유회관, 국제회의장 그리고 기념관 등이 지어질 예정이었지만 예산 부족으로 자유센터만 완공됐다. 골조공사만 진행됐던 국제자유회관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관광공사가 매입해 타워 호텔이 됐는데, 적자 누적으로 1967년 민간에 매각됐다. 이후 몇 차례의 소유주 변경을 거친 후 지금은 반얀트리 호텔로 운영 중이다.

자유센터의 경우 냉전시대 종식과 함께 반공 이데올로기가 힘을 잃자 그 용도가 애매해졌다. 자유센터의 도로변 정문에 ‘KFF 한국자유총연맹’이란 간판이 설치돼 있지만, 이곳을 지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어떤 단체인지 모를 것이다. 현재 자유센터는 사무국 외의 공간은 웨딩홀, 택배회사, 식당, 자동차극장 등으로 쓰이고 있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성지였던 이곳이 공연예술의 성지로 바뀌게 됐다. 낡은 정치 이념과 더러운 권력욕을 대신해 순수한 예술혼과 미래에 대한 꿈이 자라날 것이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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