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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권위와 권력

김동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군사안보)


몇 달 전 모 방송사 시사교양 프로그램에 나간 적이 있다. 하나의 주제를 1시간 가까이 강연하는 프로그램이다. 사실 출연 섭외가 들어왔을 때는 전문분야가 아니라는 이유로 사양했다. 섭외 담당 작가가 예의상 이 분야 최고 권위의 전문가라며 졸랐지만 정중하게 거절했다. 대신 이야기 범위를 내 전문분야로 넓혀달라는 의견을 전했고 흔쾌히 동의를 얻었다. 덕분에 준비 과정도 유익했고 녹화도 유쾌했다. 섭섭지 않은 시청률이라니 뒤늦은 나의 교양 프로그램 데뷔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북한에 대해 가르치다 보니 하루에도 몇 번씩 기자들의 전화를 받는다. 단순 질문도 있지만 기사에 전문가 의견을 넣거나 뉴스에 영상, 육성이 담긴 전문가 인터뷰로 사용하기 위함이다. 간혹 내 전공인 군사안보와 무관한 북한 관련 내용을 묻는 기자도 적지 않다. 마감에 촉박하게 기사를 준비하는 기자에게도 매정하지만 전문분야가 아닌 것은 답하지 않는다.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이나 방위사업처럼 국방부·군과 관련된 질문이면 뭐든 답변을 주리라고 과대평가해 준 기자들에게는 미안할 따름이다. 인터뷰를 사양하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을 한다. “이 기사에 전문가로 내 이름이 나간다면 기사의 권위가 떨어질 겁니다.”

권위는 어떤 분야에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이나 위신을 말한다. 이를 겸비한 해당 분야의 뛰어난 전문가를 권위자라고 한다. 개인뿐 아니라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기업이나 조직도 권위 있는 단체라고 부른다. 즉 권위가 있다는 것은 사회에서 분명한 지위가 있고, 그 지위에 따라 정당하게 무엇인가를 할 권리이자 해야 할 역할이 있음을 의미한다. 권위만 앞세우거나 권위에 맹목적으로 순종하는 권위주의는 구분돼야 한다. 권력과도 분명 다르다.

사람들을 복종케 하는 힘을 가졌다는 점에서 권위와 권력은 공통점이 있다. 권력은 교묘하게 권위의 모습을 이용하기도 하지만 자발성에 차이가 있다. 복종을 스스로 선택하는지가 권위와 권력을 구분하는 척도다. 권위는 기본적으로 동의가 수반되며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자연스레 인정된다. 반면 권력은 강제적이다. 타인의 동의와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실행하기 위해 직간접적으로 행동을 강제한다. 여기에 권력과 사이비 권위가 결탁한다. 넘치는 정보 속에 사는 현대인은 무엇이 진실인지 불확실성의 불안감에 빠져 있다. 결국 방송과 온라인 플랫폼에 넘쳐나는 소위 권위 있다는 전문가와 크리에이터가 전하는 정보에 선택을 저당잡히고 있다.

진정한 권위란 주어진 지위에 따라 당당하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정당한 권력의 행사다. 30%대 지지율의 대통령에게 과연 권위가 있을지 궁금하다. 그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수사 중인 사람의 대사 임명 등을 국민이 정당한 권력 행사로 생각할지도 의문이다. 권력은 주로 권위가 없을 때 본색을 드러낸다. 권위를 상실한 권력은 물리력을 앞세우기도 하고, 직접적 힘이 아니더라도 복종하지 않을 때 겪게 될 위험을 조장한다. 공포심으로 어쩔 수 없이 굴복하게 몰아간다. 대통령실 수석비서관이 과거 회칼 테러 사건 운운하며 태연하게 언론을 협박하는 정도라면 권위는 사라지고 권력만 난무한 세상이다.

왕도정치(王道政治)를 설파한 맹자는 양혜왕에게 “왕은 이로움이 아닌 다만 인의(仁義)만 있을 뿐이다”고 말했다. 또 힘보다 인(仁)과 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힘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려면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복종을 얻을 수 없으나 인덕으로 통치하면 백성들이 진심으로 복종한다는 가르침이다. 나는 오늘도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귀속될 누군가를 꿈꾼다.

김동엽(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군사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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