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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특정인 위한 대중동원 기계 된 한국 정당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정당이 부족처럼 되고 있다. 의원과 후보들은 부족의 전사처럼 변했다. 당원이나 지지자들은 자신의 정당이 이 모양이 된 것에 부끄러워해야 마땅할 텐데 그럴 의사가 없다. 어떻게 공천을 저렇게 할 수 있는지 의아한데 그들은 시스템에 의한 공천 혁명이라고 말한다. 그 뻔뻔함이 놀랍다. 지금 정당은 누군가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악성 팬덤(특정 인물·분야를 열성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나 무리)을 동원하고, 배타적 계파 이익을 표출하고 갈등과 분열을 조장한다. 이건 우리가 필요로 하는 정당이 아니지만 달리 어찌할 길이 없다는 게 우리를 슬프게 한다.

민주주의는 ‘대중 직접 정치’가 아니라 ‘정당 책임 정치’로 작동한다. 정당이 나쁘면 정치도 민주주의도 빠르게 나빠진다. 시민 삶에도 협동과 평화가 깃들 수 없다. 지금 우리 현실만큼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정당이 통치의 정당성을 제공하고, 참여를 조직하고, 이익을 표출하고, 갈등을 통합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면 민주주의도 얼마든지 우리를 고통스럽게 만들 수 있다.

나쁜 정당의 대표적인 유형은 ‘유일 정당’이다. 당이 곧 국가이고 국가가 곧 당인 일당제는 인간이 만든 체제 가운데 가장 폭력적이었다. 정당(party)은 부분(part)에서 온 말이다. 그런 부분이 전체가 되면 마치 영혼 없이 신체만 있는 인간이 야수가 되듯 ‘무규범의 힘의 논리’가 정치를 지배한다. 복수정당 체제에서도 정당은 나빠질 수 있다. 그때에도 최악은 정당이 ‘자신만 옳은’ 일당제주의자의 심리를 가질 때다. 상대에 대한 혐오가 당원과 지지자의 마음을 지배하면 정당은 대중폭력을 자극하는 위험한 ‘머신(machine)’이 된다.

그간 우리 사회가 해체되거나 무정부 상태로 퇴락하지 않은 것은 최소한의 정당정치가 작동했기 때문이다. 37년 전의 민주화가 피를 덜 흘리고 성취될 수 있었던 것도, 군부를 조용히 병영으로 돌려보낼 수 있었던 것도, 여야 정당들이 함께 일을 했기 때문이다. 행정부 수반을 교체하는 대통령 선거가 국가 전체를 들었다 놨다 할 정도의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계층·이념·지역·세대·문화 갈등이 누적되고 확대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서로 죽고 죽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진보정당을 포함해 여러 정당이 사회를 나눠서 ‘다원적으로’ 대표하고 경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제 그런 정당정치가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정당의 공천 과정이 이를 실증한다.

정당이 그 말 본래의 의미에서 정당이 아니라 사당(私黨)이 되고 악당(惡黨)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정당은 ‘부분’이면서 동시에 ‘파트너십(partnership)’과도 어원을 같이한다. 정당은 다른 것들의 연합체이고, 그렇기에 갈등을 흡수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정당은 서로 달라야 하고, 그 다른 것들이 공존하면서 경쟁할 때 평화의 효과를 낳는다. 이번 공천은 정반대의 힘이 지배한다. 다름은 공존할 수 없다. 폭력으로라도 없애고 싶어 한다. 한 사람에 대한 맹목이 정당을 지배한다. 따질 수 있는 것은 이게 이재명 당인지, 윤석열 당인지만 있다. ‘친박연대’가 끝인 줄 알았는데, 사람 이름을 온전히 당명으로 사용하는 조국의 당도 출현했다.

이 모든 것이 대중이 원하고 당원이 바라는 일로 당연시하는 정치의 시대가 왔다. 그것의 뒷면은 사인화(私人化)된 정당의 전면화다. 정당이 가치도 신념도 없이 특정인을 둘러싼 대중 동원 기계가 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60년 전, 남부와 북부 사이의 내전이 막바지였을 때 에이브러햄 링컨은 “우리가 심판받지 않고자 한다면 상대 또한 심판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지지자들에게 호소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심판’하고 ‘청산’하겠다고 정당이 소리치고 당원이 열광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비극이다.

박상훈 국회미래연구원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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