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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의료체계 고질병 ‘대형병원 쏠림’ 이참에 과감히 수술해야

상급병원, 중증·응급환자 집중토록
전공의 파업 따른 비상진료대책의
경증환자 분산 시스템 상시화하길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20일째 이어지고 있는 10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대형병원에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윤웅 기자

전공의 파업은 상급종합병원의 두 가지 구조적 문제를 드러냈다. 이들이 일손을 놓자 한국 최고 병원들의 치료 역량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의사 인력의 40%를 값싼 노동력의 전공의로 채워 수익을 내온 터라 빈자리가 그만큼 컸다. 교육받는 의사들이 빠졌다고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병원. 결코 정상일 수 없는 민낯이 노출됐다. 그런데, 전공의가 떠나자 “비로소 상급병원다워졌다”는 상반된 평가도 함께 나왔다. 요즘 상급종합병원은 중증·응급 환자만 남기고, 병·의원(1차 진료기관)이나 종합병원(2차 진료기관)에서 치료할 수 있는 경증 환자를 원래 갔어야 할 진료기관으로 회송하고 있다. 그 규모가 기존에 수용하던 환자의 절반에 달한다. 전공의 공백에 꼭 받아야 할 환자만 받다 보니 중증·응급 환자에 집중하는 3차 진료기관 본연의 기능이 강제로 되살아난 것이다.

전공의가 없다고 진료 공백이 발생하고, 진료 공백이 생겼는데 병원다워지는 이 복합적인 모순은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고질병인 대형병원 쏠림 현상에서 비롯됐다. 질환의 경중에 따라 진료기관을 지정했지만, 너도나도 큰 병원을 찾는 통에 대형병원마다 너무 많은 환자가 몰려 정작 중증 환자들이 의료 지연 상황에 내몰려 왔고, 병원들이 전공의 인력을 활용해 이를 감당하면서 그들의 근무 여건은 열악한 수준을 벗어날 수 없었다.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 도입과 함께 1~3차 진료의 틀을 갖춘 의료전달체계는 이후 35년간 저렇게 왜곡된 상태로 방치돼 왔다. 한국 의료계의 숙원이라 할 만큼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풀지 못했던 문제가 이번 사태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 지금이 과감히 수술에 나설 적기다.

해결책도 제시돼 있다. 전공의 파업에 대비한 정부의 비상진료대책이 상시적 시스템으로 자리잡게 제도를 정비하면 된다. 그 대책의 핵심은 상급종합병원의 문턱을 높이는 것이었다. 정부는 상급병원 경증 환자를 1·2차 진료기관에 보내고, 신규 환자를 질환의 경중에 맞는 병원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국에 ‘회송전담병원’ 100곳을 지정해서 환자 분산의 유기적 협력 체계를 갖추는 작업에도 착수했다. 지금 비상조치로 이뤄지는 이런 과정이 파업 종료 후에도 지속되도록 각급 병원에 인센티브를 부여해 적극적인 참여를 끌어내고, 경증 환자에게는 상급병원 이용 부담을 높이는 장치를 면밀히 갖춰야 한다. 2차 진료기관과 각 지역 공공병원이 진료 역량을 키워 의료전달체계의 허리 역할을 하도록 각종 지원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환자가 줄어들 상급종합병원에는 중증·응급 환자 치료에 전념해도 병원 운영이 가능토록 보상체계를 정비해야 한다. 그래야 의료체계의 정점에 있는 최고 병원들이 절박한 환자의 생명을 살리는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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