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비참함, 물려주고 싶지 않아”… 출산 거부하는 한국인들

직장인 ‘부부 휴직 의무화’ 1순위 선호
상사 눈치·승진 불이익에 사용 꺼려
英 BBC “한국 노동시장 성장 더뎌”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또다시 역대 최저를 기록하면서 육아휴직 등 ‘있는 제도’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경직된 직장문화부터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도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사회’라는 인식이 자리 잡지 않으면 유례없는 초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28일 고용노동부의 ‘2022년 기준 일·가정 양립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상시근로자 5인 이상 사업체 5038곳 중에서 ‘육아휴직이 필요한 사람은 모두 사용할 수 있다’고 답한 사업체는 52.2%에 불과했다. ‘일부 사용 가능’은 27.1%, ‘전혀 사용 불가능’은 20.4%로 나타났다.

육아휴직을 쓸 수 없는 이유는 ‘동료 및 관리자의 업무 가중’(42.6%)이 가장 많았다. 대표적 일·육아 지원 제도인 육아휴직조차 현장에선 눈치 보며 사용해야 하는 실정인 것이다.

육아휴직은 승진 평가에서도 불리한 요소다. 육아휴직 기간을 승진 소요기간에 산입하지 않는다는 사업체는 45.6%에 달했고, 휴직기간의 일부만 산입한다는 업체도 23.7%였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해 12월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저출생 해결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 1위는 ‘부부 모두 육아휴직 의무화’였다.

어렵게 출산·육아휴직을 사용하고도 다시 직장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여성이 많다. 통계청의 ‘2023 상반기 기혼여성 고용 현황’에 따르면 기혼여성의 17%가 경력단절 여성이었고, 이 중 42%가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뒀다고 답했다. 자녀가 많을수록, 자녀가 어릴수록 경력단절 여성 비율이 높아졌다.

경력단절 이후 여성의 고용 환경은 더욱 나빠진다. 여성가족부가 2022년 기준 경력단절 이후 여성 일자리를 분석한 결과 상용근로자 비중은 30% 포인트 이상 감소하고 임시근로자는 9% 포인트 증가했다.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의 임금은 경력단절을 경험하지 않은 여성의 84.2% 수준에 그쳤다.

해외 언론의 분석도 비슷하다. BBC는 27일(현지시간) ‘한국 여성들이 아이를 갖지 않는 이유’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문제의 핵심은 지난 50년간 한국경제가 빠른 속도가 성장했고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으로 진출해 꿈을 펼쳤지만 ‘아내’와 ‘어머니’의 역할은 아직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것”이라고 짚었다.

TV 프로듀서인 예진(30)씨는 BBC 인터뷰에서 “아이를 낳으면 직장을 그만둬야 한다는 암묵적인 압박이 있다”며 “여동생과 두 명의 앵커가 그런 일을 겪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결혼·출산 대신 경력을 선택한 그는 “아이를 키울 시간도 충분치 않다”며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하고, 회사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여가시간에도 자기계발에 힘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BBC는 이외에도 과도한 사교육비와 주거비 부담, 미혼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홀로 임신할 수 없다는 점 등도 낮은 출산율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세종=박상은 기자, 장은현 기자 pse0212@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