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병, 다른 처방… ‘의사 부족’ 대처하는 獨의사들의 자세

영·프·독 의사들도 투쟁 중

영국의학협회(BMA) 소속 의사들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런던 성토머스병원 앞에서 ‘시급 15파운드는 수련의에게 공정한 임금이 아니다’고 적힌 피켓을 들고 수련의 파업을 지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정부와 의사단체 간 충돌로 국민이 피해를 보는 상황은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공의료 체계가 일찍이 뿌리내린 유럽 주요국에서도 의사들이 정부와 이견을 좁히지 못해 파업 등 투쟁에 나서고 있다. 제도적 환경이 달라서 한국 상황과 직접적 비교는 어렵지만 낮은 의료수가와 의사 부족 등 본질적 쟁점은 궤를 같이해 눈여겨볼 만하다.

英 의대생 ⅓ “졸업 후 다른 나라로”

BBC에 따르면 영국의학협회(BMA) 소속 수련의들이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닷새간 파업을 진행했다. 수천명이 진료를 거부하면서 병원 수십곳의 정기 수술과 진료 예약 10만건이 취소됐다. 영국 의사들의 집단행동은 지난 1월 전공의들의 엿새간 파업에 이어 50여일 만에 이뤄졌다. 1월 전공의 파업은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가 출범한 1948년 이후 가장 긴 파업이었다.

이들의 투쟁은 정부와 임금 인상 협상이 틀어지면서 시작됐다. 영국에서 1년차 전공의가 받는 임금은 시간당 15.53파운드(약 2만6200원)로, 최저임금이 10파운드(1만6900원)인 것을 감안하면 전공의 급여로 충분치 않다는 게 BMA의 주장이다. 이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년간 동결분을 포함해야 한다면서 35% 인상을 요구했다. 정부는 11.8%를 제시했지만 양측 차이가 워낙 커서 협상은 결렬됐다.

영국 의료계에선 진료보조(PA) 인력의 업무 허용 범위를 두고 의사면허 기구인 일반의협의회(GMC)와 BMA 간 논쟁도 거세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NHS는 병원과 일반의(GP) 수술실에서 근무하는 PA를 현재 4000명에서 2038년 1만명까지 늘릴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라 다음 달부터 대규모 PA 충원이 이뤄질 예정인데 의사 반발이 크다. 의사들은 정부 방침대로 PA를 대폭 늘린다면 의료서비스의 질이 하락하고 의사의 위상도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일간 더타임스는 영국 의대 재학생 3분의 1이 졸업 후 2년 안에 NHS를 떠날 계획이라고 응답한 설문조사 결과를 전했다. 2021년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취업비자 받기가 쉬워진 호주가 인기 근무지로 꼽힌다고 한다. 더타임스는 “떠나는 젊은 의사들을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느냐”며 “옛날에는 영국에 머무는 게 영웅적으로 보였을 수 있지만 이젠 아니다”고 지적했다.


佛정부-의사, 상담료 놓고 힘겨루기

프랑스에서도 수가 인상을 놓고 의사노조와 정부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프랑스 국민건강보험기금(CPAM)은 지난달 8일 의사노조 6곳과 협상을 진행했다. 프랑스 일반의(GP) 기준 상담료는 의사노조와 CPAM의 협상에 따라 5년마다 갱신된다. 지난해 노조는 2017년 책정된 상담료 25유로(약 3만60 00원)를 30유로(약 4만3200원)로 올려 달라고 요구했다. 협상 결렬 후 중재를 통해 조정된 상담료는 26.5유로다. 노조는 “30유로는 최소한의 요구”라며 관철을 시도하고 있다.

CPAM은 노조 요구안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의료서비스를 개선할 수 있는 분명한 조치가 동반돼야 한다는 점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CPAM은 ‘분명한 조치’의 예시로 야간 당직근무 확대 등을 들며 치료 접근성 개선을 요구했다. 양측의 협상은 앞으로 몇 주간 계속될 예정이다.

일간 르몽드는 “사회보장분담금 상한선 이상으로 진찰료를 인상하려는 의사들의 반란”이라며 “의사노조는 세력을 규합해 당국에 힘을 과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대가가 없다면 요구안 수용도 없다는 입장”이라며 “의료비 지출을 억제하면서 의사들에게 더 큰 헌신을 촉구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근무여건 불만’ 獨의사들 파업 시도

독일에선 유럽 최대 의사노조인 ‘마르부르크 분트’ 소속 의사들의 파업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시사지 슈피겔에 따르면 독일 전역 23개 대학병원 의사들은 지난 1월 30일 경고 파업을 했다. 이들은 응급환자 진료는 보장하면서 예정된 검사와 긴급하지 않은 시술만 지연하는 방식을 택했다.

독일도 프랑스와 마찬가지로 정부와 의료보험조합, 의사노조가 단체협약을 통해 급여를 책정한다. 대학병원과 공공병원 의사들은 공무원처럼 정해진 월급을 받는다. 이 때문에 독일에선 의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의사노조 측에서 의대생 증원을 선제적으로 요구한다.

마르부르크 분트는 연간 12.5%의 임금 인상과 야간·주말·공휴일 근무에 대한 추가수당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12.5%는 물가 상승에 따른 자연스러운 인상률이라고 노조 측은 주장한다. 이들은 대학병원 의사 기본급이 시립병원 의사나 개원의보다 최대 600유로 낮은데도 근무시간은 더 길다고 비판했다. 또 강도 높은 당직근무 등으로 대학병원 근무 환경이 한계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노조와 정부 간 3차 협상이 지난 1월 열렸지만 합의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유럽에선 만성적인 의사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현실적 대안으로 외국인 의사 수혈이 꼽힌다. 자국 의대에서 교육받은 외국인 의사를 붙잡아 두는 게 중요해졌다. 카밀라 호손 영국 왕립일반의협회장은 가디언 기고에서 “늘어나는 의료서비스 수요를 인력 충원 속도가 따라오지 못하면서 외국인 의사 의존도가 커지고 있다”며 “수련을 마친 우수한 일반의들이 국내에 무기한 체류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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