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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의협의 말말말

태원준 논설위원


지난주 경기도의사회 집회의 피켓에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경제 망했다고 돈 찍어내던 베네수엘라, 필수의료 망했다고 의사 찍어내는 대한민국.’ 다른 지역 의사회 집회에선 이런 피켓도 보였다. ‘사회주의 좌파 학자와 관료에 놀아난 포퓰리즘 의대 증원.’ 이는 대한의사협회(의협)의 최근 성명 문구와 일맥상통한다. ‘한국 의료를 쿠바식 사회주의 의료 시스템으로 만들려는 정부.’ 이런 구호는 의협이 의대 증원을 사회주의 정책으로 규정해 저항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윤석열정부는 누가 봐도 보수 정권이다. 문재인정부 정책을 죄다 뜯어고친 정부에 사회주의 딱지를 붙인다? 의협은 지금 아주 어색한 구호를 앞세워 의대 증원을 저지하려 하고 있다.

보수 정권을 사회주의로 몰아세우는 기저에는 정부의 ‘수가(酬價)’ 통제권에 대한 불만이 있다. 건강보험에서 지불하는 의료의 대가를 통제하면서 의사 수를 늘려 분배의 몫까지 줄어들게 하는 건 사회주의 아니냐는 말인데, 그렇지 않다. 수가 통제는 의사와 환자가 처방을 따를 수밖에 없는 비대칭 관계여서 정부가 개입하는 것이고, 의사 증원은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자본주의 선진국마다 고령화에 앞다퉈 하고 있는 일이다. 오히려 의사 증원이 부를 경쟁을 봉쇄하려 드는 의협 주장이 더 사회주의에 가까워 보인다.

‘사회주의’ 운운한 구호처럼 이번 사태에서 의협 인사들이 꺼낸 발언은 국민이 보기에 이해할 수 없는 게 많았다.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 “의사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지방에 부족한 건 환자가 아니라 민도다.” “사회주의에서 맛없는 빵 만들어 배급하듯, 반에서 20~30등 하는 사람 뽑아 (의사 만들려 한다).” “(국내 의사 증원은 안 되지만) 외국 의사를 수입해서라도 빨리 (필요 인력을) 맞춰야 한다.” 이런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는 이들이 과연 의사라는 지성인 집단을 대표할 수 있을까. 마침 의대 교수를 비롯한 의료계 내부에서 의협의 대표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문제가 된 듯하다.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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