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꺅! 저리가’ 혐오의 상징된 비둘기… ‘불임 먹이’ 제안도

숫자 늘며 지하철역 안까지 활개
관련 민원 한해 3000건 육박
법으로 먹이주기 금지 가능해지자
보호단체, 스페인식 해결법 주장

입력 : 2024-02-26 00:04/수정 : 2024-02-26 00:04
비둘기 수십 마리가 밀집한 서울시내 보도에서 지난달 16일 한 시민이 손으로 머리를 막으며 비둘기 떼를 피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출퇴근길에 서울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을 이용하는 장모(26)씨는 최근 역사 내에서 비둘기 두 마리가 걸어다니는 장면에 기겁했다. 비둘기들은 회색 천장이 익숙한 듯 역사 내를 날아다녔다. 저공비행을 하는 비둘기와 부딪힐까봐 장씨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2호선 합정역 출입구에도 비둘기의 천적인 독수리 사진이 붙어 있다. 역사에 진입하는 비둘기로 민원이 잇따르자 역내 직원들이 붙여놓은 것이다.

‘평화의 상징’으로 불리던 비둘기가 골칫덩이로 전락하고 있다. 비둘기 배설물 탓에 도심 곳곳에서 악취가 나고, 털이 날려 알레르기를 호소하는 시민도 있다. 개체 수 조절 방식을 두고서도 논란이 계속된다.

25일 환경부에 따르면 2022년 전국에서 접수된 비둘기 관련 불편 민원은 2818건에 달했다. 2018년 1931건에서 46%가량 늘어난 수치다. 국내 비둘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집비둘기’는 1980 년대에 대거 수입됐다. 당시 정부는 88서울올림픽 등 각종 행사를 위해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수입해 대량으로 날렸다. 이후 개체 수가 급증하면서 문제가 됐다.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에 따르면 전국에 사는 집비둘기 개체 수는 최소 18만 마리에서 최대 29만 마리로 추정된다.

환경부는 이미 2009년부터 비둘기를 유해조수로 지정해 개체 수 조절에 나섰다. 지방자치단체도 ‘비둘기에게 먹이를 주지 마세요’ 등의 캠페인을 통해 개체 수 조절을 시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인파가 밀집한 지하철역이나 공원에서까지 시민들이 비둘기로 골치를 앓을 만큼 상황이 악화하자 먹이주기를 금지하는 법안까지 나왔다.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한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지자체장이 조례를 통해 유해 야생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동물단체들은 이런 방식이 비둘기를 아사(餓死)시킬 수 있다고 반발한다.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권 단체들은 지난 20일 국회 앞에서 ‘비둘기 먹이 주기 금지 대신 불임 먹이 촉구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먹이 자체를 끊는 대신 ‘오보컨트롤(ovocontrol)’이라는 이름의 ‘불임 먹이’를 주자는 주장이다.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는 3년간 집비둘기에게 불임 먹이를 주자 개체 수가 55% 이상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하지만 정부는 불임 먹이에 회의적 입장이다. 비둘기를 제외한 다른 야생동물이 불임 먹이를 섭취할 경우 생태계 교란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비둘기 보호단체인 ‘승리의비둘기’의 이지현 대표는 “불임 먹이를 참새나 까치 등이 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지만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 불임 먹이를 주면 비둘기들이 시간에 맞춰 방문해 대부분 먹고 가기 때문에 다른 새들이 섭취할 가능성은 굉장히 낮다”고 말했다. 다만 불임 먹이 비용을 정부나 지자체가 추가로 내는 것은 또 다른 부담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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