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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에서] 이상기후가 흔드는 경제

문수정 산업2부 차장


유독 ‘안전안내문자’가 바삐 울리는 날이 있다. 지난 22일이 그랬다. 그날은 오전 7시 정각부터 오전 8시22분까지 1시간30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폭설’을 경고하는 안전안내문자가 네 차례 답지했다. 요란한 아침이었다. 밤새 많은 눈이 내리긴 했다. 집 밖으로 나가 보니 제설작업이 충분히 되지 않은 도로에서 차들이 느릿느릿 거북이걸음을 했다.

폭설에 따른 도로 결빙을 언급하던 지방자치단체는 그날 오전 10시를 넘어서니 ‘고드름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고층건물에서 고드름이 떨어져 안전사고가 우려된다는 안내문자는 그날 오후 한 차례 더 발송됐다. 폭설, 도로 결빙, 고드름 낙하, 나무 쓰러짐 등이 시민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경고가 쏟아진 그날은 겨울치고는 따뜻한 날이었다. 잦은 경고가 싱겁게 느껴진 오후였다. 돌이켜보면 이번 겨울은 그리 춥지 않았다. 작년 11월 2일은 1907년 이래 가장 따뜻한 서울의 11월 아침 날씨로 기록됐다. 그날 서울의 일 최저기온(하루 중 가장 낮은 기온)은 18.9도였다. 잠깐씩 맹추위가 찾아왔지만 대체로 큰 추위 없이 지났다. 대신 눈과 비가 잦았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겨울 평균 강수량은 228㎜로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작년보다는 3배나 많은 양의 비나 눈이 내렸다.

덜 춥고 눈과 비가 많이 내렸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너무 추운 겨울’이었다. 단골 식당 사장님은 비 오는 날이 그렇게 싫었다고 한다. 가게 창 너머로 겨울비를 야속하게 바라보며 오가는 이들 중 누군가는 문을 열고 들어와주길 바라는 그 초조함이 사람 참 힘들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때에 맞지 않는 날씨는 장사하는 사람들만 힘들게 하는 게 아니다. 대기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유통업계에서 상대적으로 좋은 실적을 냈던 편의점업계도 “날씨가 받쳐주지 않았다”는 말을 한다. 편의점은 유동인구가 많아야 매출이 오르기 때문에 궂은 날씨는 언제나 반갑지 않다.

추울 때 춥고 더울 때 더운 건 과일과 채소 작황에도 중요한 일이다. 너무 춥거나 너무 덥거나 너무 비가 많이 오거나 너무 비가 오지 않는 ‘이상한 날씨’가 잦아지면 농사를 망친다. 작년에는 봄부터 날씨가 받쳐주지 않았다. 봄추위가 길어져서 과실수에 꽃 피는 시기가 엉망이 됐다. 여름엔 폭염과 폭우가 들이닥쳤다. 궂은 날씨에 전염병인 탄저병이 돌았다. 출하 시기엔 태풍이 직격탄을 날렸다. 지난가을 사과, 배, 단감 생산량이 전년 대비 30%가량 줄어든 데는 날씨 탓이 컸다.

나쁜 날씨는 장바구니물가를 끌어올렸다. 사과 배 단감 등 제철과일 가격이 1.5~2배 이상 급등했다. 사과 한 개에 5000원이 넘는 때도 있었다. 사과가 비싸니 감귤로 수요가 몰렸고, 작황이 괜찮았던 감귤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뛰었다. 감귤 한 개 전국 평균 소매가격이 600원을 넘기기도 했다.

이상기후는 생산자부터 소비자까지 모두의 경제 상황에 영향을 미친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뭘 하고 있는 걸까. 바나나 키위 파인애플 등 해외 과일 관세를 낮춰서 수입을 늘릴 거라는 대책만 거듭하는 걸 보면 한숨이 나온다. 바나나는 귤을 대체할 수 없고 키위가 사과를 대신할 수 없다. 이런 식의 대책이 제철과일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수입 물량을 늘리는 건 탄소발자국을 더 많이 만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상기후가 일상이 된 시대,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대책이 필요한데 그런 게 보이지 않는다. 안전안내문자를 수시로 보내는 정도로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을 하는 건 아니길 바란다.

문수정 산업2부 차장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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