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민주주의의 본이 되는 교회

손화철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고대 아테네의 민주 제도는 유명하지만 많아도 거주민의 20%에 해당하는 남성 시민만 참여하는 제한적인 형태였다. 반면 성경의 가르침과 초대교회나 종교개혁의 역사를 보면 제도화되지는 않았더라도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뚜렷이 보여주는 예가 많다.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모든 인간이 피조물인 동시에 구원이 필요한 죄인으로서 평등하다고 가르친다. 신약 성경에는 초대교회의 여성 지도자 이름이 여럿 나오고 그들의 발언권이 작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당시의 시대상을 생각하면 교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가 밖에서보다 훨씬 높았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라고 한 바울의 선포는 가히 혁명적이다. 여성 안수를 논외로 하더라도 한국 교회의 평등 의식은 성경 시대보다 못하다.

물론 교회사에는 오래 이어진 차별과 혐오가 있었다. 그러나 이는 사람이 성경을 오해해서 큰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이자 교훈이다. 그 교훈 때문에 기독교회는 개인의 과도한 권위를 경계하고 합의와 토론을 중요하게 여긴다. 종교개혁자들이 성직자의 특별한 지위를 부정하고 개인이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서 자기 죄를 고하고 은혜를 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과 연결된다.

종교개혁자들이 일반인은 읽을 수 없었던 라틴어 성경을 일상어로 번역하고 요리문답을 만들어 일반 성도를 가르친 것도 그 시대를 앞섰다. 신분에 따라 교육의 기회를 가르고, 문해력마저 통제하던 역사를 생각하면 이런 시도는 스스로 생각하는 능력을 믿는 민주적 보편교육의 정신과 일치한다.

근대 민주주의 제도는 기독교가 가르치는 평등과 합의의 이념을 반영한다. 민주주의는 모든 시민이 기본적으로 합리적 결정의 주체라고 생각하지만 동시에 모두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한다. 그래서 각자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종국에는 다수결의 원칙을 따른다. 그뿐만 아니라 다수가 함께 오류를 범해서 생길 부작용을 줄이려고 정기 선거의 규칙도 함께 마련해 두었다.

한국은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연결을 직접 경험한 나라다. 일제와 독재 치하에서 민주주의 교육은 교회에서 가장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다. 당회에서 공동의회에 이르는 각종 회의뿐 아니라 교회학교에서조차 어린 학생들이 자치회의를 열어 토론하고 대표자를 뽑고 회칙을 따지는 일이 일상이었다. 수많은 증거와 역사에도 불구하고 불행히도 오늘날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관계는 못내 어색하다. 독재를 미워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면서 목사직을 세습하고 차별과 혐오의 언어를 서슴지 않으며 자기주장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모습이 기독교인의 특징으로 과대 대표되고 있다. 이런 자들에게 민주주의는 숫자와 조직의 힘으로 다른 집단을 겁박할 때만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혹자는 기독교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니 “교회에서는 민주주의가 통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을 완벽하게 대변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 원리가 필요하다. 교회는 계시로 주신 성경을 해석할 때 오류 가능성을 겸손히 인정하고 함께 토의하며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한다. 오류 가능성을 부정하면 신성모독으로 이어진다.

정치적 양극화와 가짜뉴스, 탈진리의 문화로 전 세계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진 시대에 기독교회는 자기의 옳음만 주장하는 과도한 당파성이나 인간 지도자에 대한 충성, 부당한 차별을 극복해야 한다. 성경이 가르치는 이웃 사랑과 존중, 오류의 인정, 진실하고 겸손한 소통만으로도 기독교회는 민주주의의 본이 될 수 있다.

손화철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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