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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원의 메디컬 인사이드] 의료 공백 앞 말기 암 환자의 호소


“삶의 마지막 길에서 간곡히 호소합니다.”

이건주 한국폐암환우회장이 며칠 전 올린 유튜브 영상의 첫 화면에 띄운 글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여명 3개월 선고를 받고 호스피스 입원을 기다리고 있다. 오랫동안 암 환자로 의료 현장을 경험한 그가 의대 정원 확대로 촉발된 의료 공백을 걱정하며 정부와 의사단체, 전공의들 그리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간절한 메시지를 보냈다.

보건복지부에는 “국민도 의사 부족을 실감하지만 준비 안 된 갑작스러운 의대 증원은 의료의 질을 낮출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의사협회에는 “사회에 대한 관용을 보여 달라”고 했다. 전공의들에게도 “힘없는 환자들은 오늘도 여러분의 사랑을 기다린다. 어려운 환경일수록 ‘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라는 제네바 선언을 지켜 달라”고 간청했다. 윤 대통령에게는 환자 입장에서 정책을 세우고 집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말기 암 환자가 오죽 답답했으면 생의 막바지에서 의료 파국을 막기 위해 나섰을까 하는 서글픔이 든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젊은 의사들은 집단으로 병원을 떠나고 있다. 제네바 선언은 헌신짝처럼 버리고 환자에게 등을 돌린 모습이다.

전공의들이 자리를 비운 병원에서 한시가 급한 암 환자들의 수술은 취소되고 몇 개월씩 기다려 잡은 입원·진료는 무기한 연기되고 있다. 전공의가 떠난 응급실과 수술실에선 교수와 전임의, 간호사들이 대신하고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하면 이들 또한 더는 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땐 더 큰 ‘쓰나미’가 닥칠 수 있다.

의·정 강 대 강 대치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필수·지역의료 붕괴의 원인을 의사 수 부족에 있다고 보고 큰 폭의 의대 증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2000명 증원도 모자란다고 강조한다. 반면 의협은 지금도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으며 의대 증원은 결국 국민 의료비 상승으로 이어질 거라면서 정책 자체의 폐기를 요구한다.

의사들은 2000년 2014년 2020년 세 차례 집단행동에서 정부를 굴복시킨 학습 효과로, 이번에도 버티면 이길 수 있을 거라 자신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큰 착각이다. 이유야 어찌됐건 의사가 환자를 저버리고 이탈하는 것은 직업 윤리적으로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정부는 앞선 집단행동 때 의사들 반발에 물러섰던 전철을 다시는 밟지 말아야 한다. 불법적인 행위에 대해선 법적 책임을 끝까지 물어야 할 것이다.

다만 대치 상황이 길어지면서 환자, 국민의 피해와 고통이 가중될 수 있는 점은 안타깝다. 이건주 회장은 유튜브 영상 마지막에 “환자들의 생명을 볼모로 정치를 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이번 사태의 당사자들이 귀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더 이상의 파국을 막고 환자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사회적 중재 노력도 필요하다. 의학 분야 석학단체인 대한민국의학한림원이나 전국 의대 중 처음으로 비상대책위원회를 띄운 서울대의대교수협의회 등 전문성 있고 중량감 있는 사회 원로들이 나서야 한다.

현재의 의·정 대치는 양측의 신뢰 관계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의사 수 부족에 대한 근거와 증원 찬반을 주장하는 논리에서 서로 극명한 인식 차이가 있다. 그간 둘 다 형식적 소통에 그쳤던 게 아닌가.

한 의대 교수는 “의사들이 소통하지 않고 강경 투쟁만을 고집하면 집단행동은 ‘밥그릇 지키기’로만 보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부도 증원의 원칙은 고수하되 2000명이란 숫자에 연연하지 말고 보다 열린 마음으로 대화와 협의에 임했으면 한다.

지속적이고 진정성 있는 대화를 통해 서로 간 오해가 풀리고 신뢰가 쌓이면 현재의 난국을 타개할 열쇠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떠나간 전공의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미래의 의사들도 교실로 복귀하는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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