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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신장 받고 살아난 사람의 편지 보며 위안”

[커버스토리] 장기기증자 유가족 이야기

지난해 9월 장기기증 대기자 4명에게 새 삶을 선물하고 떠난 고(故) 김건혜씨가 생전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유가족 제공

“만약, 건혜가 가게 되면 장기기증을 하는 건 어때?”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딸이 누워 있는 중환자실 복도에서 남편이 불쑥 물었다. 한 명밖에 들어갈 수 없어 중환자실 앞에서 기다렸던 남편이 벽에 붙은 장기기증 포스터를 보고 꺼낸 말이었다.

스스로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했던 아내 김보정(53)씨였지만 막상 장기기증 대상이 자기 자식이라고 생각하니 화가 나고 무서웠다. 말을 꺼낸 남편에겐 화부터 냈다. 더욱이 딸은 비록 몇 시간이지만 스스로 호흡을 했다고 했다. 곧 깨어날 것처럼 누워 있는 딸을 두고 장기기증이라니….

양가 상견례 후 예비 신랑과 함께 동해로 여행을 떠났던 딸은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스노클링 후 밖으로 나오던 중 물에 빠진 남자친구를 잡아 주려다 물에 빠져 병원으로 옮겨졌다. 담당 의사는 딸이 살아날 가능성이 “0.1%”라고 전했다.

믿고 싶지 않았지만 의사의 말대로 딸은 나빠지기만 했다. 딸을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에 힘겹게 장기기증을 결심했다가 거둔 적도 있었다. 장기기증 절차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서 그전까지 막연했던 장기기증이 머릿속에 그려졌고,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 여겼다. 보정씨는 “그 사실을 듣는 것만으로도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거절했다”고 돌아봤다.

망설이던 가족의 마음을 움직인 건 건혜와 네 살 터울인 남동생의 말이었다. 남동생은 “누나가 27년을 살면서 이렇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면 너무 허무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결국 가족들의 결심에 건혜씨는 지난해 9월 7일 네 명에게 새 삶을 전하고 떠났다.

건강할 ‘건(建)’에 은혜 ‘혜(惠)’. 보정씨가 직접 지은 삼남매 중 둘째 딸의 이름이다. 무엇보다 건강하게 자라라는 마음을 담아 글자를 골랐다. 이름 덕인지 건혜씨는 크면서 잔병치레 한번 없었다고 한다.

활달한 성격에 친구들도 많아 한꺼번에 예닐곱명씩 집에 데리고 와 라면을 끓여 먹였다. 집에 항상 라면이 박스째 쌓여 있을 정도였다. 가족들에게도 늘 살가웠다. “정말 수다가 많았어요. 건혜가 스물한살 때부터 사고 나기 전까지 저랑 한방에서 같이 잤는데 잠들기 전까지 계속 말을 했어요.” 지난 15일 만난 보정씨는 딸과의 수다가 떠오른 듯 미소를 환하게 지으며 당시를 떠올렸다.

“웃는 얼굴이 참 예뻤다”는 보정씨 말처럼 건혜씨는 웃음만으로 주위를 기분 좋게 하는 사람이었다. 건혜씨가 불의의 사고를 당한 후 모르는 이가 빈소를 찾아 쭈뼛쭈뼛 대며 조문을 했는데 알고 보니 건혜씨가 다니는 회사의 건물 경비원이었다. 경비원은 매일 아침 8시30분 생글생글 웃으며 들어오는 건혜씨를 보면 밤샘 근무한 자신까지 힘이 났다고 기억했다. 그는 건혜씨 사망 소식을 들은 후 “너무 눈에 밟혀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고 싶어 빈소를 찾았다”고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보정씨는 장기기증을 하고 떠난 딸이 그래도 4명의 타인에게 새 생명을 선물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장기기증이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고 한다. 딸의 장기기증 사실을 전해 들은 지인들이 “그런 무서운 걸 왜 했냐”고 되묻기도 했다.

잠시 어지러웠던 마음은 딸의 생명을 나눠 받은 수혜자의 편지를 본 후 정리가 됐다. 보정씨는 지난달 4일 딸의 신장을 기증받았다는 이가 쓴 편지를 봤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었다. 보정씨는 편지를 출력해 휴대전화 케이스에 넣어 다닌다고 했다.

“따님의 신장을 이식받은 수혜자입니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녀의 생명 일부를 저에게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로 시작하는 편지는 딸을 잃은 부모를 위로하고, 자신이 받은 은혜에 대한 고마움, 새 삶에 대한 다짐 등이 담겨 있었다.

5년간 투석하며 신장 이식을 기다린 수혜자는 몸이 약해져 식사를 전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건혜씨 신장을 이식받았다고 했다. 약해져 있는 몸 상태에도 부작용 없이 순조롭게 회복했다는 소식도 전했다.

딸이 생각날 때마다 수시로 편지를 꺼내 본다는 보정씨는 지난 설날 딸이 안치된 봉안당을 찾아 편지를 읽어주기도 했다. “귀하신 분의 아름다운 인생까지 받아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하루하루, 한순간도 헛되이 보낼 수 없고 언제나 생각나지 않을 때가 없습니다…이제 저도 따님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자주 연락 드릴게요.”

장기기증자, 대기자의 0.9% 불과


건혜씨처럼 새 생명을 선물하고 떠나는 이들이 줄을 잇고 있지만 여전히 공여자와 수혜자의 격차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장기기증을 한 이는 483명으로 전해보다 늘었지만 아직 답보 수준이다. 반면 장기이식 대기자 수는 지난해 말 기준 5만1857명에 이른다. 이식을 기다리던 이들의 죽음도 양자의 격차만큼 많다. 보건복지부의 ‘장기이식 현황’을 보면 2022년 장기이식 대기 중 사망자 수는 2918명에 이른다.

해외와 비교해도 국내 장기기증은 드문 편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뇌사에 따른 국내 장기 기증률은 7.88%로, 미국(44.5%)이나 스페인(46.03%)과 차이가 크다. 이는 그간 많이 지적된 대로 국내 장기기증 방식이 ‘옵트아웃(Opt-out)’을 취하는 해외 주요국과 달리 ‘옵트인(Opt-in)’ 방식을 채택한 것과 관계가 깊다.

해외 주요국은 장기기증을 거부한다는 의사를 밝히는 경우 외에 장기기증에 동의한 것으로 보지만 국내는 반대로 기증을 희망하는 이들이 등록하는 방식을 취해 장기기증 가능 숫자가 적다. 복지부 국립장기조직혈액관리원이 지난달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누적 희망등록자 수는 178만3283명이다. 국민의 3.4% 수준이다.

이마저도 법적 효력이 없어 본인이 생전 기증 의사를 밝혔다고 해도 유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 관계자는 “법적 효력이 없기 때문에 유가족 설득 과정에서 거절당하는 일도 잦다”고 말했다.

그렇다 보니 장기기증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보정씨는 “아직은 장기기증을 떠올릴 때 ‘기증’보다는 ‘장기’에 초점이 맞춰져 장기 매매 등 부정적 인상이 먼저 연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태어날 때 뭔가를 선택하고 태어나진 않지만 떠나기 전에 선택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장기기증이라 생각한다”며 “(장기기증을 두고)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가장 귀한 선택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결정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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