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노을 보며 ‘변산 아씨’ 생각하나

전북 부안이 품은 새로운 명소

청호저수지에서 사진 명소로 인기를 얻고 있는 교통 표지판 잔교 너머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다.

전북 부안군 변산반도는 한반도가 품은 작은 반도다. 서해가 품은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힐 만큼 빼어난 자연경관을 갖춰 ‘서해의 진주’라고 불린다. 변산이 품은 해안에는 모래와 바다, 노을뿐 아니라 기암괴석이 바다와 뭍의 경계를 지킨다.

변산반도 끝자락에 모항(茅項)해변이 어머니의 품처럼 아늑하게 매달려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늦게 해가 지는 모항은 1999년 12월 31일 ‘새천년을 잇는 영원의 불씨’를 채화했던 곳이다. 격포항에서 곰소항으로 향하는 해변길 정도로 인식돼 무심코 지나치기 쉽다. 이 바람에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아직 찾는 사람이 뜸하다. 명성을 알린 격포해수욕장이나 변산해수욕장에 비하면 고요하게 석양을 감상할 수 있다.

안도현 시인은 ‘모항 가는 길’이라는 시에서 ‘모항 가는 길은 우리들 생이 그래왔듯이 구불구불하지(중략) 모항에 도착하면 바다를 껴안고 하룻밤 잘 수 있을 거야’라고 표현했다.

부안 변산 끝자락 모항해변에서 만나는 독특한 모습의 바위. 황홀한 낙조를 등지고 턱을 괴고 앉아 있는 듯한 실루엣이 조각가 로댕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을 닮았다.

모항은 직소폭포, 적벽강, 채석강, 솔섬, 위도와 더불어 전북 서해안권 국가지질공원 명소 6곳 중 하나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바위가 해변에 숨어 있다. 최근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생각하는 사람 바위’이다. 해변 기암지대에 목포 갓바위와 비견될 정도로 신비한 모습으로 우뚝하다.

아득한 옛날 백악기에 화산 폭발로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진 바위가 파도와 바람의 침식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독특한 모습에 벼락바위로, 해골바위로도, 외계인바위로도 불린다. 이 바위의 진면목은 서쪽 바다로 해가 떨어질 때 만난다. 황홀한 낙조를 등진 검은 실루엣이 턱을 괴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조각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연상시킨다. 그 너머로 숨죽인 물결에 붉은 기운이 잔 비늘처럼 내려앉아 반짝인다.

모항에서 염전으로 유명한 곰소까지는 바다를 낀 드라이브 코스다. 해안도로는 서해안에서도 아름답기가 으뜸이다. 산과 해변을 양쪽에 끼고 굽이치는 길 주변으로 고즈넉한 포구와 기암절벽, 아늑한 해변이 마술을 부리듯 나타났다 사라진다.

반듯하게 정리된 바둑판 모양의 곰소염전과 소금창고.

곰소는 변산반도와 선운산 사이로 깊숙이 파고든 곰소만(줄포만)을 품고 있다. 갯벌과 바다가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으로, 이곳에서 생산되는 젓갈과 천일염은 명성이 자자하다. 곰소항에서는 싱싱한 횟감보다 군침을 흘리게 만드는 젓갈이 손꼽힌다. 잡것을 섞지 않고 자연 발효와 오랜 숙성을 거쳐 탄생하는 젓갈은 곰소염전의 천일염으로 만들어 감칠맛이 더하다. 바다 건너로 보이는 땅이 전북 고창이다. 고창 앞바다의 외죽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선다.

염전의 소금 작업이 이뤄지는 시기는 봄부터 가을까지다. 철이 아니라고 곰소염전을 안 보고 갈 수는 없다. 반듯하게 정리된 바둑판 모양의 염전과 소금창고 등이 이색적인 풍경을 펼쳐놓는다.

곰소는 1938년까지만 해도 섬이었다. 본래 이름은 웅연도(熊淵島)다. 변산팔경 중 제1경인 웅연조대(熊淵釣臺)가 꼽힌다. 곰소 앞바다 대죽도·소죽도 너머 고창 선운산의 아름다운 정경과 칠산바다 어선들의 불빛이 바닷물에 어리는 풍광을 아우르는 말이다. 나머지는 직소폭포(直沼瀑布)·소사모종(蘇寺暮鐘)·월명무애(月明霧靄)·서해낙조(西海落照)·채석범주(採石帆舟)·지포신경(止浦神景)·개암고적(開岩古蹟)이다.

곰소만의 가장 안쪽에 과거 줄포항이 있었다. 일제강점기 목포나 군산보다 먼저 개항했고, 조기가 많이 잡히는 칠산어장을 끼고 있어 번영했던 항구였다. 인근 김제·만경평야의 쌀을 수탈해서 일본으로 가져가는 창구역할도 했다. 그러나 토사가 쌓이면서 항구의 기능을 잃었다. 항구는 인근 곰소항으로 옮겨가고 1990년대에 줄포는 폐항됐다.

부안 줄포만 노을빛 정원 너머로 넓게 펼쳐진 갯벌.

쓸쓸하게 남았던 폐항은 전북도 제2호 지방 정원으로 등록된 ‘부안 줄포만 노을빛 정원’으로 변해 있다. 2003년부터 줄포면 줄포리·우포리 일원의 침수 방지를 위해 줄포만 67만7662㎡의 갯벌을 막아 만든 공원이다. 2006년 줄포만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데 이어 2010년 2월 람사르 습지로 지정·등록됐다. 갯벌생태정원, 사계절 정원, 바람 동산, 화훼 단지 등의 테마정원으로 돼 있어 볼거리, 즐길 거리가 다양하다.

아침노을이 아름다운 이색적인 풍경으로 최근 SNS 등에서 사진 명소로 인기를 누리는 곳이 있다. 하서면 청호리에 있는 면적 5㎢, 둘레 8㎞ 규모의 청호저수지다. 간척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축조한 저수지는 겨울철 청둥오리, 가창오리, 흰뺨오리 등 많은 철새의 쉼터이기도 하다.

잔잔한 호수는 들과 산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펼쳐놓는다. 여기에 교통 표지판 잔교 등 독특한 소재가 청호저수지에서만 볼 수 있는 인생샷 명소를 선사한다. 주변에 조성된 풍차, 천국의 계단, 그네 등 다양한 포인트도 선물 같은 풍경을 더한다.

여행메모
모항 바위·저수지 잔교… 내비 검색
변산 봄 야생화 대체지 23일 개방

부안 줄포만 노을빛 정원은 서해안고속도로 줄포나들목에서 가깝다. 모항해변 가는 길에 곰소염전과 곰소항을 지난다. ‘생각하는 사람 바위’는 모항해나루호텔 인근에 있다. 표지판이나 이정표가 따로 없다. 내비게이션에 ‘변산면 도청리 201’을 검색하면 공터가 나온다. 바로 옆 데크길을 내려가면 만난다. 교통 표지판 잔교는 ‘하서면 청호리 산 62-5’를 찾아가면 된다.

곰소에서는 젓갈 백반과 바지락 칼국수를 맛봐야 한다. 마른 새끼 갈치에 마늘, 쪽파, 고춧가루 등을 넣어 자작자작하게 조린 풀치 조림 백반은 고소하고 칼칼하다. 담백한 백합죽도 별미다. 모항에 펜션, 민박 등이 많다. 멀지 않은 곳에 국립변산자연휴양림도 있다.


이른 봄철 부안에서 ‘변산 아씨’로 불리는 변산바람꽃(사진)을 빼놓을 수 없다. 변산반도국립공원사무소는 변산바람꽃과 노루귀 등 봄 야생화 대체서식지를 조성해 오는 23일부터 다음 달 17일까지 약 한 달간 개방·운영한다.



부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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