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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개기 상장에 주가는 ‘반토막’… 덩치만 키운 한국 증시

분할 상장 쉽고 자금조달 수단 여겨
시가총액 늘어나 증시 몸집만 불려


두산로보틱스는 상장 첫날인 지난해 10월 5일 주가가 97.79%나 오르며 화려하게 증시에 데뷔했다. 그러나 모회사 ㈜두산은 이날 오히려 19.40% 하락했다. 자회사가 상장되면서 ㈜두산에 투자해온 소액주주는 피해를 본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두산로보틱스 상장 후 ㈜두산의 주가가 저평가됐다며 꾸준히 매수 보고서를 내놓고 있지만, 주가는 요지부동이다. 20일 기준 ㈜두산 주가는 두산로보틱스 상장 전 거래일보다 13.87% 하락했다.

국내 상장사가 핵심 사업을 떼어 따로 상장하는 ‘쪼개기 상장’은 소액주주 입장이 고려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증시에 상장돼 있다면 시장 수급이 핵심 사업 자회사로 쏠리면서 모회사 주가가 하락하는 식이다. 모회사와 자회사의 가치가 시장에서 더블카운팅(이중계상) 되는 것도 모회사 기업가치에 부정적으로 작용한다.

2020~2021년 유동성 장세를 틈타 카카오게임즈를 시작으로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를 차례로 상장시킨 카카오도 대표적이다. 자회사 경영진이 상장 후 스톡옵션을 행사해 지분을 팔고 나가는 집단 ‘먹튀’ 사태까지 벌어져 도덕성 문제도 불거졌다. 카카오 주가는 이날 기준 2021년 카카오뱅크 상장 전보다 60.60% 폭락한 상태다.

국내 상장사들은 핵심 자회사를 분할해 상장하는 것을 손쉽고 유용한 자금조달 수단으로 여겨왔다. 카카오의 쪼개기 상장은 현재 진행형이다. 카카오는 향후 카카오모빌리티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도 상장할 계획이다. 이 같은 행태에 대한 소액주주의 반발은 거세지만 경영진의 결정을 막는 데 성공한 적은 없다. 2020년 LG화학이 배터리 부문을 신설 법인(현 LG에너지솔루션)으로 물적분할해 상장하려 했을 때 2대 주주인 국민연금도 반대했지만 저지하지는 못했다.


쪼개기 상장의 반복은 한국 증시의 몸집만 부풀렸다. 선진 증시는 지수와 시가총액이 동반하게 되는데 시총만 커진 한국 증시는 유독 괴리율이 높다. 이날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코스피 기업 전체 시가총액은 2126조3725억원으로 집계됐다. 2014년(1192조2529억원)의 배 수준이다. 반면 같은 기간 지수는 38.61% 늘어나는 데 그쳤다. 금투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 증시의 시가총액은 쪼개기 상장 등으로 부풀려진 왜곡된 수치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스피 시총은 미국 애플의 시가총액(약 3768조원)에 한참 못 미친다고 지적받는데 현실은 더욱 암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물적분할에 반대하는 주주들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주기로 하고, 자회사의 상장 심사 문턱을 높이는 등 제도를 손보고 있다. 그러나 시장에서 정책 효과를 체감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남길남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조정실장은 “정부의 규제가 점점 까다로워지고 있으니 경영진의 선택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광수 기자 g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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