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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손흥민의 ‘라스트 댄스’

김준엽 문화체육부장


잉글랜드 축구 대표선수였던 데이비드 베컴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16강 아르헨티나전에서 디에고 시메오네에게 거친 반칙을 당했다. 분을 참지 못한 베컴은 바로 보복성 반칙을 했고, 이를 눈앞에서 지켜본 심판은 베컴에게 레드카드를 꺼냈다. 수적 열세에 놓인 잉글랜드는 승부차기 끝에 패배했다.

축구 사랑이 유별난 영국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다. 칼끝은 베컴을 향했다. ‘10명의 용감한 사자와 한 명의 멍청이’라는 헤드라인은 당시 모든 분노가 베컴에게 집중돼 있었음을 보여준다. 토니 블레어 당시 영국 총리, 글렌 호들 잉글랜드 대표팀 감독 등도 비난 행렬에 동참했다. 영국 땅에서 베컴이 숨을 곳은 없어 보였다.

단 한 곳만은 예외였다. 베컴의 소속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었다. 퍼거슨 감독은 경기 다음 날 베컴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고 “휴가를 다녀와라. 우리가 돌봐주겠다”고 위로했다. 그리고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로 베컴을 불러들였다. 베컴을 공격하려는 언론이나 팬들의 접근을 완전히 차단해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베컴은 팀의 보호를 받으며 마음을 추슬렀다. 그리고 2002 한일월드컵 진출이 걸린 2001년 10월 그리스와의 경기에서 종료 직전 극적인 프리킥 동점골을 터뜨리며 영웅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20년도 더 된 베컴 이야기를 끄집어낸 건 최근 한국 축구 대표팀의 갈등 상황을 지켜보며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다. 한국 축구의 현재인 손흥민과 미래로 평가받는 이강인이 아시안컵 도중에 충돌했고,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강인은 SNS를 통해 사과했지만, 대중의 분노는 점점 더 커지는 모양새다. 이강인 팬들은 손흥민에게 달려가 비난을 퍼붓는다. 이들을 관리하고 보호했어야 할 감독은 사태를 수수방관했고, 결국 경질됐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은 심지어 두 선수 때문에 경기력이 좋지 않았다고 책임을 떠넘기는 볼썽사나운 모습까지 보였다. 그리고 그런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한 책임이 있는 대한축구협회는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고 있다. 정몽규 회장은 “소집하지 않는 징계밖에 없다”고 말했다.

축구 대표팀은 보통 4년 주기로 계획을 짜야 한다. 월드컵, 아시안컵 등 굵직한 대회에서 성과를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손흥민은 아시안컵 이후 “앞으로 대표팀을 계속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 할 거 같다”고 말했다. 자신이 없는 앞으로의 4년을 고민해 보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앞서 대표팀 주장이었던 박지성은 2011년 아시안컵, 기성용은 2019년 아시안컵 직후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큰 대회를 끝낸 후 새 판을 짤 여건을 만들어 주기 위해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손흥민은 30대 초반에 은퇴한 이들보다 더 많은 나이임에도 대표팀에서 뛰고 있다. 2026년 북중미월드컵 때면 손흥민도 30대 중반이다. 대표팀에서 뛰기엔 어려운 나이일 수 있다.

영국 매체 ‘더선’이 한국팀 다툼을 보도한 직후 손흥민 소속팀인 토트넘 홋스퍼는 SNS 공식 계정에 손흥민 사진과 ‘우리 주장’이라는 문구를 올렸다. 우리 팀 주장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처럼 보였다. 감독과 선수들은 아시안컵에서 돌아온 손흥민을 일제히 최고의 주장이자 동료라고 추켜세우고 있다. 토트넘은 손흥민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팀은 선수를 보호해야 한다. 팀을 제대로 이끌지도 못하는 감독, 선수들의 갈등을 방치하는 협회, 이런 환경에서 국가대표 손흥민에게 ‘라스트 댄스’를 바라는 건 너무 염치없는 것 아닐까.

김준엽 문화체육부장 snoop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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