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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사직때문에 수술 어렵대요” 암 환자 하염없이 눈물

빅5 병원 의료 공백 사태 현실화
환자 많아 치료 5시간 넘게 기다려
폐암 3기도 응급실 입원 못 하기도

전국 수련병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서 제출을 본격화한 19일 서울 강남구 SRT 수서역 버스 정류장에서 병원 진료를 위해 상경한 환자들이 삼성서울병원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최현규 기자

의대 정원 증원에 반발한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본격화하면서 서울의 ‘빅5’ 병원(서울대·서울아산·세브란스·삼성서울·서울성모)에선 의료공백 사태가 현실화하고 있다. 수술을 불과 하루 앞두고 취소 통보를 받거나, 진료를 위해 썼던 휴가를 그냥 날리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취재진이 19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40대 여성 A씨는 진료실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암 환자인 A씨는 지난 17일 수술 예정이었지만 수술 전날 병원 측으로부터 수술이 어렵다는 연락을 받았다. A씨는 다음 수술 일정을 물었지만 전공의 사직 여파로 답을 듣지 못했다고 한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던 A씨는 입술을 떨며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너무 아파서 빨리 수술받고 싶어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무작정 왔다”고 전했다.

서울성모병원을 찾은 B씨(81)는 심각한 통증에도 입원하지 못한 채 40분간 기다려야 했다. 그는 폐암 3기 환자다. B씨는 충남 당진에서 택시까지 타고 왔지만 응급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B씨 보호자는 “동네에는 마땅한 병원이 없어 서울성모병원까지 오는데 오늘처럼 기다린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삼촌과 함께 응급실을 찾은 40대 남성도 “30분째 기다리고 있는데 대기가 너무 길어진다”며 “이러다 삼촌이 정말로 안 좋은 일을 당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복통을 호소하는 딸을 데리고 온 여성도 “진통제 주사만 맞으면 되는데 1시간 가까이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서울아산병원에서 만난 유선희(36)씨는 회사 동료에게 양해를 구하느라 진땀을 뺐다고 했다. 진료받기 위해 2개월 전에 연차를 썼지만 일정이 늦춰졌기 때문이다. 유씨는 “환자들도 개인 일정을 조정해 어렵게 병원에 온다는 점을 고려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진료가 미뤄지지 않은 환자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치료를 위해 아산병원에 들른 복막암 환자 민영조(82)씨는 2주마다 예정된 항암치료가 무산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폐암 진단을 받은 지모(65)씨도 수술받지 못할 것에 대비해 동시에 여러 병원을 예약했다고 한다.

보호자들도 답답한 건 마찬가지다. 세브란스병원에서 만난 60대 여성은 “전공의는 없고 환자가 많아 항암치료만 5시간 넘게 기다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노모와 함께 병원에 온 여성은 응급실 앞에서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것인가”라며 답답함을 호소하다가 ‘사람이 없다’는 안내를 받고 발걸음을 돌렸다. 아산병원에서 대기하던 50대 보호자는 “어머니 연세가 여든이 넘어 편찮은 곳이 많은데 심장내과 진료가 밀려서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취재진이 병원에서 만난 보호자 중에는 이번 집단행동에 동참한 인턴 의사도 있었다. 경기도의 한 병원 소아과에서 근무했던 30대 이모씨는 전날 사직서를 냈다. 심장 수술을 한 모친과 함께 이날 서울대병원을 찾은 이씨는 “인턴 의사이자 환자 가족으로서 양가적 감정이 든다”며 “정부도 의사도 자존심 싸움을 벌이지 말고 현장에 있는 환자를 먼저 생각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20일부터 빅5 병원 전공의들의 업무 중단이 본격화하면 의료공백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세브란스병원에서 항암치료를 받아 왔다는 여성 C씨(78)는 “답답한 것은 환자뿐이다. 수술이 늦어지면 살 사람도 죽거나, 아프지 않던 사람도 아플 수 있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김재환 김용현 백재연 기자 j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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