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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읽혀지면 뒤틀고 뭉개… “난 추상화를 해부하는 사람”

이상남 개인전 ‘마음의 형태’

중진 이상남 작가가 서울 강남구 페로탕갤러리 도산파크점에서 점·선·면으로 된 기하학적 추상화를 선보이는 ‘마음의 형태’전을 하고 있다. 사진은 근작 ‘마음의 형태’(2022, 캔버스에 아크릴, 183.6×152.8×4㎝). 페로탕갤러리 제공

이상남(71) 작가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인근 페로탕 갤러리를 찾았다. 페로탕은 파리를 기점으로 현재 7개 도시에 갤러리를 운영 중인 세계적인 갤러리다. 2016년 서울에 상륙해 ‘페로탕 삼청’을 연데 이어 2022년에는 ‘페로탕 도산파크’점을 열었다.

개인전 개막일인 지난달 말 전시장을 찾아 작가를 만났다. 프랑스 작가 로랑 그라소 등 주로 외국 작가를 소개해 온 페로탕 갤러리에서 모처럼 한국 작가를 내세웠기에 이상남이 누군지 궁금증이 컸기 때문이기도 했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나온 이상남은 20대 시절인 1970년대에 회화도 조각도 아닌 아방가르드한 미술 운동을 했으며, 대구를 기반으로 일어난 실험미술 운동인 대구현대미술제, 도쿄 센트럴미술관의 ‘한국현대미술의 단면전’, 상파울루 비엔날레 등 국내외 주요 전시에 초대받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1981년 뉴욕 브루클린미술관에서 열린 ‘지금 한국의 드로잉(Korea Drawing Now)’ 그룹전에 참여한 걸 계기로 뉴욕으로 건너간 이후 뉴욕과 서울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다.

현대미술의 심장 뉴욕 화단에서 40년 넘게 활동하며 그가 구축한 세계는 오히려 전통적인 장르인 회화였다. 한국에서는 한창이던 미니멀리즘과 개념미술은 그가 건너간 초기 뉴욕에서는 한물 갔다. 오히려 독일신표현주의 회화나 데이비드 살레 등이 제작한 회화가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시기라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기하학적 추상화’라 부를 수 있는 있는 이상남의 회화에는 점, 선, 면 등 기하학적 요소의 이미지와 기호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은 그 이미지에 대해 뭐라고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 한다. 무작위적인 구름에 ‘양떼구름’이라고 이름을 붙이고 싶어 하는 마음처럼 말이다.


이상남(사진)의 그림에서도 뭔가가 연상이 된다. 원과 직선의 축이 있는 이미지를 보고 “저건 자전거나 대포를 닮았다”고 했더니 작가는 “다른 사람은 다른 걸 생각하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그래서 전시 제목을 마음의 형태로 지었다. 사람들의 마음 상태에 따라 제 그림이 읽히는 형태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상남의 그림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는데 의미가 있는 거 같다.

“저는 캔버스 속에 천여가지 이미지를 제시합니다. 보는 사람들에 의해 뭔가가 읽혀지는 듯하면 부분적으로 살짝 지우거나 덧붙이거나 해서 이미지를 뒤틀어 놓습니다. 고정적 이미지에 묶이면 (정답 같은) 언어가 되니까요. 저는 그걸 피하고 싶었거든요.”

이를 테면 이미지가 대포로 보이면 슬쩍 지우거나 물감을 깎아내고 다시 칠해 흔들어 놓는 식이다. 작가는 “대포일 수도 있고 대포가 아닐 수도 있는 게 제 그림의 매력”이라면서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를 자신이 살아오며 체험한 것을 통해 읽고 해석한다. 그렇게 다각적으로 읽혀지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이상남 작가는 마치 감상자와 술래잡기라도 하고자 하는 거 같다. 감상자가 어떤 도형을 특정 이미지로 붙잡으려고 하면 다시 도망치면서 날 잡아보라며 숨는 아이가 되고자 하는 듯하다. 영원히 자신의 그림이 이해불능의 수수께끼로 남기를 원하는 작가처럼 보인다. 그는 스스로를 “추상화를 해부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도형 회화를 선보인 초기작 ‘푸른 원’(1993, 캔버스에 아크릴, 122×91㎝). 페로탕갤러리 제공

미술평론가인 정연심 홍익대 교수는 “이상남이 선택한 형태들은 기호가 되어 여기와 저기를 끊임없이 부유하며 자리 잡기를 거부하는 ‘유목민적 존재들’”이라면서 “이상남의 기호는 작가 개인의 인생과 그가 살아온 다양한 도시의 여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다양한 인종만큼이나 많은 서로 다른 이질적인 문화와 언어의 속상을 이상남은 신추상의 방식으로 기하학적 풍경화를 만들어낸다”고 썼다.

기하하적 추상화는 대체로 느낌이 차다. 이상남의 추상적 풍경화는 자연보다는 도시와 문명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 등 이미지들은 언뜻언뜻 기계 문명의 총체인 도시의 건축물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이상남의 기하학적 추상화에서는 어떤 따스함이 화면에서 스며 나온다. 그것은 직선이 주는 날카로움을 곡선을 써서 감싸려하고, 원색보다는 색을 섞어 한 단계 채도를 낮추는 등 중간색을 사용함으로써 날카로움을 중화하려는 태도에서 발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전시는 3월 16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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