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전체기사

[세상만사] 나한테 ‘감히’

최예슬 온라인뉴스부 기자


요즘 주차장에서 벌어진 황당한 일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달구는 일이 잦다. 배려는 기대조차 할 수 없고, 지켜야 할 원칙을 어겨 지적했을 때 오히려 욕을 듣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줬다는 걸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은 것 같다. 몇 달 전 한 아파트 주민이 주차장에서 경차 자리를 두 칸이나 차지한 중형 세단을 보고 관리사무소에 문제를 제기했더니 “주차 자리 없는데 뭐 어쩌라고” 하며 대응한 차주가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또 전기차 충전이 끝났는데도 차를 빼지 않아 신고하자 “크록스 질질 끌고 애XX 재우면서 사진 찍느라 고생이다. 안전신문고(신고 앱) 거지XX”라는 욕설이 담긴 쪽지가 돌아온 일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배려 없는 행동을 지적받으면 자신을 돌아보기는커녕 “나한테 감히…”라며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사례가 자주 눈에 띈다. 도로 위에서 벌어지는 시비 역시 비슷한 양상이다. 많은 차량이 다니는 도심에서 안전을 위해 때로 클랙슨을 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감히 나한테 클랙슨을 울려?”라며 보복운전으로 맞서는 일이 뉴스에 종종 나온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동 입구를 막고 주차한 포르쉐로 ‘민폐’ 논란이 있었다. 통행에 불편을 겪은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해 경비원이 아침에 차주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아침부터 자는 사람 깨워서 차 빼라고 한 것에 대해 사과하라”며 오히려 큰소리였다. 자신이 남에게 끼친 민폐는 생각하지 않고 ‘감히’ 자신의 잠을 깨웠다며 ‘괘씸죄’를 내세웠다.

사전적으로 ‘감히’는 ‘말이나 행동이 주제넘게’라는 뜻이다. 이 단어를 자주 쓰는 사람에 대해 ‘자아가 비대하다’고 진단하는 전문가 분석도 있다. 이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배려와 존중을 찾기 어려워진다. 상대를 나와 동등하다고 여기는 게 아니라 우위를 점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힐수록 남은 보이지 않는다. 타인의 사소한 언행도 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인다면 ‘감히’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나온다. 누군가에게 ‘감히’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경쟁이 익숙한 사회라는 방증일지 모른다. 만성적 경쟁의식에 익숙해지면 만만하게 보여선 안 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히는 듯하다.

실제로 외국인들이 바라보는 한국은 경쟁 속에서 커 온 사회였다. 지난달 미국의 유명 작가이자 144만명의 유튜브 구독자를 보유한 마크 맨슨이 한국인의 정신건강이 위기를 맞은 이유를 찾고자 방한한 내용을 영상으로 올렸다. 그는 무엇 때문에 한국인이 우울하고 불안한지 찾고자 했다.

한국에서 15년간 거주한 미국인 스타크래프트 프로 해설가 니콜라스 플롯도 이 영상에 출연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서로를 밀어붙여 점점 (상황이) 나아지게 하는 작은 생태계가 생기면 한국인이 (그 환경을) 완전히 지배한다”며 “자신이 잘하는 일에 전념하도록 강요한 다음 가능한 많은 성과를 짜내기 위해 사회적 압력, 경쟁을 적용하는 공식은 효과적인 것으로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것이 만들어낸 심리적 부진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고 우려했다.

경쟁이 심한 회사는 ‘감히’라는 말이 좀 더 자연스럽게 들리는 조직이다. 한때 직장 내 꼰대 감별법으로 ‘꼰대 육하원칙’이 유행했다. 그중 하나가 “어딜 감히?”였다. 자신은 조직에서 우위를 점했고, 아래에 있는 사람의 주제넘은 행동을 용납할 수 없다는 마인드라면 꼰대가 맞는다. 직장에서 꼰대가 환영받지 못하듯 ‘감히족’은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사회는 경쟁이란 동력도 필요하지만 분명 배려도 필요하다.

최예슬 온라인뉴스부 기자 smarty@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