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에 과잠까지… 고성에 피켓 대신 캐주얼 시위 ‘눈길’

코로나 때 군중 집회 대안으로 시작
시대 맞춰 정치색 없는 다양한 의견
빠르고 자유로운 방식으로 전달해

LG에너지솔루션 직원들의 요구사항을 담은 시위 트럭이 지난 5일 서울 여의도 일대를 돌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경북대와 금오공대 통합을 반대하는 경북대생들이 지난해 12월 대구 북구 경북대 본관 앞에 학과 점퍼를 쌓아놓은 모습. 연합뉴스
지난 5일 오전 8시쯤 200인치 전광판을 실은 트럭 한 대가 서울 여의도 일대를 천천히 지나갔다. 3.5t 크기의 파란색 트럭은 오후 4시까지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앞을 지나 여의도 일대를 수차례 순회했다.

전광판에는 ‘정량적 성과 보상으로 회사와 직원의 공동 성장을 요구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LG에너지솔루션 직원 일부와 연구기술사무직 노조가 사측에 성과급 제도 개선 등을 요구하기 위해 ‘트럭 시위’를 진행한 것이다. 익명 모금에 참여한 인원만 1700여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 방식이 진화하고 있다. 민주화운동 시절 화염병 시위를 지나 장소와 일자를 정한 뒤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던 전통적 시위를 거쳐 이제는 요구사항을 빠르고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으로 시위 형태가 달라지고 있다.

트럭 시위는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집합금지의 대안으로 떠올랐다. 군중이 모여 시위할 수 없게 되자 트럭을 대신 보낸 것이다. 코로나 사태는 끝났지만 트럭을 이용한 시위는 새로운 시위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이용층도 넓어지고 있다. 초반에는 아이돌 팬클럽에서 주로 이용했지만 최근에는 온라인 게임 이용자나 회사 노조 등도 트럭 시위를 하고 있다.

시위용 트럭을 운영하는 한 업체 관계자는 7일 “대규모 인원이 모여 시위를 하긴 어려운 상황이지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을 때 많이 이용한다”며 “명목은 시위지만 소통의 한 창구로 쓰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시위용 트럭 운영비는 1t 트럭 기준 하루에 약 60만원이다. 보통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8시간가량을 지정된 장소에서 순회한다. 일정금액만 낸다면 소수의 의견을 빠르고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셈이다. 시위용 트럭 업체 관계자는 “60만원이 싼 가격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 본인의 의사를 밝히기에는 적당한 금액”이라고 말했다.

대학가에선 단체 점퍼 시위가 유행을 타고 있다. 지난해 12월 5일 경북대와 금오공대가 통합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경북대 본관 계단 위에는 ‘과잠’(학과 점퍼)이 쌓이기 시작했다. 경북대 학생들이 통합 반대 의사를 전하기 위해 점퍼의 등판이 보이도록 계단에 깔아놓은 것이다.

시위가 시작된 지 이틀 만에 경북대 본관 계단에는 형형색색의 학과 점퍼 500여벌이 쌓였다. 홍원화 경북대 총장은 이틀 뒤인 7일 ‘경북대 구성원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현재 우리 대학과 금오공대 간 통합을 구체적으로 논의하거나 진행된 바 없다”며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점퍼 시위가 효과를 본 셈이다.

전문가들은 시위가 더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시위의 본래 목적은 지향하는 바를 알리고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기에 시대 변화에 따라 시위 전략과 전술도 변화를 지향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도 “과거 정치적 어젠다 중심으로만 진행되던 시위가 발전하면서 이제는 다양한 분야에서 격식 없이 접근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백재연 기자 energ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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