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전체기사

“독과점 방지 플랫폼법, 국내 기업 성장 되레 발목 잡는다”

[규제 장벽을 넘어] ② 규제와 성장, 갈림길 선 ICT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정보기술(IT) 플랫폼 업계의 가장 큰 이슈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입법을 추진하는 ‘플랫폼 경쟁촉진법(플랫폼법)’이다. 공정위가 대형 플랫폼 사업자의 독과점 남용을 막기 위해 사전 규제라는 카드를 꺼내들었고, 업계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토종 플랫폼이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게 주된 우려다. 지난해 12월 공정위의 플랫폼법 제정 추진 계획이 알려진 이후 규제 범위와 대상 공개가 늦어지는 점도 업계의 불만을 키우고 있다. 그럼에도 공정위 측은 31일 “독과점 구조에 숨어있는 악의를 도려내야 할 것”이라며 법안 추진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토종 vs 해외 플랫폼 경쟁 ‘특수한 시장’

공정위가 2월 중 플랫폼법 정부안의 상세 내용을 공개할 예정인 가운데, 국내 플랫폼 업체들은 플랫폼법에 대한 반대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공정위와 업계 간 플랫폼법을 논의하는 간담회 일정도 미뤄지고 있다. 업계는 대형 플랫폼 기업을 지배적 사업자로 사전 지정하겠다는 공정위의 기본 안이 일종의 ‘낙인’이라고 주장한다. 플랫폼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이러한 낙인이 국내 기업의 신사업 추진을 가로막고 성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해외 테크 기업에도 차별 없이 법을 집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애초에 애플, 구글 등 글로벌 빅테크와 내수 기업에 가까운 네이버, 카카오 등 토종 빅테크를 동일선상에 놓는 게 적절한지 의문이 나온다.


공정위가 제시하는 플랫폼법의 주요 근거 중 하나는 유럽연합(EU)의 디지털시장법(DMA)이다. 그러나 업계에선 경쟁력 있는 토종 플랫폼이 전무한 유럽과 국내 시장은 비교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김현경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이날 열린 토론회 ‘플랫폼 규제 법안과 디지털 경제의 미래’에서 “국내 플랫폼은 글로벌 기업과 자국에서 경쟁 관계에 있는 거의 유일한 경우”라고 말했다. EU의 DMA 제정 목적은 결국 미국 빅테크에 대한 견제라는 해석도 있다.

학계에선 공정위가 자사 우대, 멀티호밍 제한, 끼워팔기, 최혜 대우를 플랫폼 사업자의 4가지 반칙 행위로 설정한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성환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개최된 플랫폼법 정책토론회에서 “4가지 행위는 경쟁법 학자들이 오랫동안 연구해왔으며, 경쟁 제한성과 위법성 여부는 가려지지 않았다”며 “그런데 공정위는 ‘예외 없이 위법성과 경쟁 제한성이 인정된다’고 발표하며 법의 방향이 극단적이라는 점을 스스로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지배적 사업자 지정을 놓고도 업계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쿠팡, 배달의민족은 사전 지정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온라인 상거래는 다른 시장에 비해 진입이 자유롭고, 쿠팡의 시장 점유율이 24%가량이라는 점이 고려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중국 쇼핑 앱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의 성장세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배달의민족은 다른 빅테크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매출액이 고려됐다. 배달의민족 운영사 우아한형제들의 지난 2022년 매출액은 2조9400억원 정도다.

한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법의 세부 사항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쿠팡과 배달의민족이 빠진다고 하니 법의 원칙과 기준이 무엇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플랫폼법 추진 사실은 이미 알려졌는데, 모호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사업에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플랫폼법 도입 이후 소비자 후생(이익)이 감소할 수도 있다고 전망한다. 예를 들어 네이버 지도 앱에서 음식점 예약 서비스나 할인 쿠폰 제공이 끼워팔기로 판단돼 중단되면, 소비자 불편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규제의 목적 중 하나인 수수료 인하도 달성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김 교수는 “플랫폼이 제공하는 할인 쿠폰 등 이용자 혜택은 수수료에서 나온다”며 “플랫폼 경쟁이 촉진되면 수수료가 낮아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 오히려 올라갈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강행 공정위… 美 통상 마찰 여부 주목

업계의 거센 반발에도 공정위는 독과점 지위 남용 방지라는 명분을 위해 법안을 추진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정위는 생활 서비스와 밀접한 플랫폼 시장은 독과점화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그 체제가 굳어지면 경쟁 질서를 회복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현행 공정거래법만으로는 시정 조치까지 시일이 오래 걸린다는 점도 강조한다.

박설민 공정위 디지털경제정책과장은 이날 국회 토론회에 참석해 플랫폼법에 대해 “공정거래법의 특별법 내지 파생법의 성격으로, 공정거래법에서 규율하지 않는 사업 형태는 이 법을 통해서도 규율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해외 빅테크 차별 우려에 대해선 “지난 2021년 구글에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 강제 관련 과징금 2200억원을 부과한 것도 매출액 (자료) 확보가 되고 근거가 있으니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플랫폼법이 한·미 통상 마찰로 번질 경우 제정 동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 상공회의소는 지난 29일(현지시간) 성명을 내고 “플랫폼 규제를 서둘러 통과시키려는 듯한 한국에 우려한다”고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이날 열린 한·미 고위급 경제협의회에선 플랫폼법이 공식 의제로 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민아 기자 minajo@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X 페이스북 카카오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