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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양승태 전 대법원장 1심 무죄… ‘사법농단’이라더니

정권따라 바뀌나, 국민들 헷갈려
검찰 기소가 무리했다는 평가지만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 의구심도

이른바 ‘사법농단’ 재판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사법농단 사건으로 기소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는 상고 법원 도입을 위해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하고, 비판적 성향의 판사들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등 무려 47개에 달했으나 모두 무죄라는 판단이 나왔다. 사법부 독립을 수호해야 할 대법원장이 재판 거래를 하고 법관의 독립된 재판을 침해했다는 의혹은 국민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러나 5년 가까이 걸린 1심 재판 끝에 그 모든 혐의들이 무죄라는 선고 또한 놀랍다. 사법부 수뇌부의 비위를 하급심 법원이 인정하고 처벌하는 것이 연목구어일 수 있지만 애당초 사법부를 장악하려는 정치적 의도로 수사와 기소를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않았는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의 1심 선고로 일반 국민들의 사법 불신이 해소될지는 의문이다.

1심 재판부가 무죄로 판단한 근거는 ‘남용할 직권이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법리다. 일부 직권남용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있지만 양 전 대법원장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일제 강제동원자 배상 판결과 관련한 대외비 보고서 작성을 지시한 것은 대법원장의 일반적 직무권한에 속하며 직권남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에 파견된 법관들을 통해 헌재재판관들의 평의 결과를 수집토록 한 것은 직권남용으로 볼 수 있으나 양 전 대법원장이 공모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에 비판적이거나 물의를 빚은 법관들을 전보조치한 것도 직권남용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법리상 죄가 안되거나, 죄가 되더라도 증거가 없다는 것이 1심 재판부의 판단이다.

이 사건은 양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일부 현직 판사들의 반발로 비화됐다. 후임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가 들어서면서 자체 조사가 강화됐다. 문재인 당시 대통령이 “사법농단 의혹을 규명해야 한다”고 촉구한 뒤 대대적인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수사를 지휘한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이었으며,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수사팀장을 맡은 3차장이었다. 김 대법원장은 양 전 대법원이 구속되자 “참으로 부끄럽다”며 국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이 퇴임하고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했던 김 전 대법원장마저 물러난 뒤 사법농단은 없던 일이 돼버렸다. 양 전 대법원장 등의 사법농단 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1심 재판부의 선고가 항소심에서 뒤집힐지는 의문이다. 무죄가 그대로 확정된다고 하더라도 이번 사건은 사법부 역사에 두고 두고 오점으로 남을 것이다. 검찰의 전직 대법원장 기소도 불명예스럽지만, 1심 법원의 무죄 선고도 제 식구 감싸기라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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