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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말레이시아 김판곤 감독

한승주 논설위원


“누가 아는가? 우리가 왜 한국을 이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나.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다.” 그의 말은 거의 맞았다. 그는 긴 웨이브 머리를 휘날리며 경기 내내 서서 선수들을 열정적으로 지휘했다. 마침내 골이 들어가자 주먹을 불끈 쥐고 환호했다.

지난 25일 카타르에서 열린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3차전. 우리 대표팀에 맞서 3-3 무승부를 거둔 말레이시아의 감독은 한국인 김판곤(55)이다. 말레이시아는 이날 이 대회에서 무려 17년 만에 골을 넣었다. 우리에게는 최악의 졸전으로 기록될 이 경기로 그는 말레이시아의 영웅이 될 것 같다. 최약체로 평가받던 팀이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 등 쟁쟁한 선수들이 출전한 한국을 이길 뻔했으니 말이다. 앞서 열린 요르단 바레인전 연속 패배로 16강 탈락이 확정됐던 말레이시아. 이기려는 의지가 없을 법한 선수들을 독려하고 자신감을 심어준 건 김 감독이다.

2022년 1월 그가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고향 진주에는 축하 플래카드가 걸렸다. 그는 한국에서 대한축구협회 전력강화위원장, 국가대표 감독 선임 위원장을 지냈다. 지난 카타르월드컵에서 한국을 16강으로 이끌었던 파울루 벤투 감독을 영입한 것도 그다. 말레이시아 부임 후 그는 탄수화물 위주였던 식단부터 바꿨다. 선수들의 몸이 달라졌다. 동남아 축구에서는 볼 수 없었던 적극적인 전방 압박을 강조하며 수비를 중시했다.

150위였던 피파(FIFA) 랭킹은 130위로 껑충 뛰었다. 차츰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아시안컵 본선 진출권을 따낸 게 결정적이다. 개최국 자격으로 자동으로 진출했던 2007년 대회를 제외하고 말레이시아가 예선을 거쳐 자력으로 본선에 진출한 것은 44년 만이다.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으로서 그의 소망은 피파 랭킹 100위 안에 드는 것이다. 베트남 축구 최전성기를 이끈 박항서 감독처럼 현지에게 사랑받는 또 한 명의 한국인 감독이 탄생할지 궁금하다.

한승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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