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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이념보다 민생’ 대만 민중당의 약진

송세영 국제부 선임기자


친미·독립 성향인 대만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라이칭더 후보가 지난 13일 실시된 총통 선거에서 40.1%(559만표)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하지만 실질적 승자는 중도 성향의 제3당인 민중당 커원저 후보라는 분석이 많다.

커 후보는 예상을 훨씬 넘는 26.5%의 득표율을 올렸다. 1996년 총통 직선제 실시 후 제3당이 20% 이상을 득표한 것은 처음이다. 이날 함께 치러진 입법위원 선거에서도 민중당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총 113석 가운데 친중 성향의 제1야당인 국민당이 52석, 민진당이 51석, 민중당이 8석을 차지했고 나머지 2석은 무소속에 돌아갔다. 과반 의석을 확보한 정당이 없어 민중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됐다.

민진당은 의석이 10석 줄어든 데다 절반에도 못 미쳐 민중당의 협조 없이는 주요 법안을 처리하기 어렵게 됐다. 라이 후보 득표율도 차이잉원 현 총통의 재선 때인 2020년보다 18% 포인트 낮아졌다. 국민당은 정권교체 여론이 60%로 높았는데도 패배했다는 점이 뼈아프다. 입법위원 의석수를 38석에서 52석으로 늘리기는 했지만, 민중당과 손 잡지 않으면 집권 여당에 제동을 걸기 어렵다. 민중당은 입법원 의석이 5석에 불과한 미니 정당이지만 돌풍을 일으켰다. 국민당과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다 파기하고 독자 노선을 선택한 게 성공이었다. 2030세대의 폭넓은 지지를 받으며 차기를 기약할 수 있게 됐고 캐스팅보트를 활용해 영향력을 키울 기회도 잡았다.

민진당과 국민당의 거대 양당 대결 구도에 균열이 나기 시작한 것은 국민당 마잉주 총통 집권기인 2014년 ‘해바라기운동’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국민당이 일방적으로 중국과 교류를 확대하는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을 처리하자 학생과 시민들이 23일간 입법원을 점거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이때 확대된 반국민당 정서를 등에 업고 2년 뒤 차이 총통이 정권 교체에 성공하지만, 민진당의 행보에 실망한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민진당은 1980~90년대 대만 민주화운동의 적자이지만 제도권에 진입한 후 기득권 집단으로 변질됐다. 부패와 성추문으로 도덕성에 타격을 입었고 경제정책 실패와 불투명한 행정에 대한 비판이 잇따랐지만, 내부 개혁보다 대외 문제에 치중했다.

이에 반기를 든 중도층과 2030세대가 선택한 대안이 민중당이다. 민중당은 독립·자유·통일 같은 거창한 가치보다 민생과 청렴을 강조했다. 저임금과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고통받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했다. 정부의 투명성과 민주적 참여를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소셜미디어(SNS)를 통한 소통에도 적극적이었다. 거대 양당이 대립하는 대외 문제에서도 민중당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연대 협력을 지지하는 동시에 중국에도 유화적인 입장을 보인다. 애매하다는 비판을 받지만, 지지자들은 실용적이고 유연하다고 평가한다.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커 후보가 26%의 득표율을 올린 것은 중국 본토의 전쟁 위협보다 사회적 평등 문제에 관심을 갖는 유권자들의 변화를 보여준다”고 짚었다.

반공 군사독재와 민주화운동 등 한국과 대만은 역사적으로 유사한 경험을 했다. 거대 양당 체제가 확고하고 이들이 기득권화돼 있는 점, 당내 민주화와 개혁을 놓고 갈등을 빚는 점, 2030세대가 이념이나 당위보다 사회적 평등과 민생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는 점도 비슷하다. 대만은 제3당을 통한 변화를 선택했고 한국의 선택은 아직 열려 있다. 오는 4월 총선은 그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장이다.

송세영 국제부 선임기자 sysoh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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