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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지연 해결”-“믿을 수 있나”… AI도입, 기대·우려 교차

법원, 9월부터 도입
양형기준 분석 모델도 개발 방침

입력 : 2024-01-22 00:03/수정 : 2024-01-22 00:34
게티이미지뱅크

대법원이 오는 9월 법원에 접수된 사건과 유사한 판결문을 재판부에 자동 추천해주는 인공지능(AI) 모델을 출범한다. 한국 사법부가 재판 업무에 AI를 도입하는 것은 이번이 최초다.

법원은 AI를 재판 지연 문제를 해소할 방안 중 하나로 보고 향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추진해 왔다. 방대한 서면을 자동 요약하고, 복잡해진 양형기준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법관에게 제시하는 등 AI 모델 추가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법관들 사이에서는 ‘판결문 쓰는 속도가 2~3배 이상 빨라질 것’이란 기대감이 나온다. 다만 정확성과 신뢰성을 완전히 담보할 수 없어 단계적으로 AI 사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21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오는 9월 출범 예정인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 내에 판결문 자동 추천 AI 모델을 적용한다. 차세대 전자소송 사업은 법원 내 노후화된 전자소송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는 사업으로 2020년부터 추진돼 왔다.

법원에 처음 도입되는 AI 모델은 재판부에 배당된 사건의 소장이나 준비서면, 의견서 등을 분석해 유사 판결문 상위 10건을 자동 추천해주는 방식이다. 민·형사, 행정, 가사 사건 등 영역에서 도입될 예정이다. 현재는 판사들이 키워드를 직접 입력해 판결문을 검색한 뒤 내용을 일일이 확인해 유사 사건을 찾아야 했다. 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결국 법관 일의 절반 정도는 (사건 관련 재판 정보 등을) 찾는 것인데 그런 시간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했다.

9월 출범 예정인 AI는 판결문 추천 기능만 제한적으로 적용됐다. 2019년 예산 확보 당시 국회에서 “국민이 법관에게서 재판받을 권리를 (AI에) 침해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고, 판결문 초고 작성 등 더 다양한 AI 활용 방안은 포함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AI 기술이 발전하고 법률시장 활용도가 높아지면서 대법원은 더 고도화된 AI 모델 개발 계획 수립에 착수했다.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은 최근 취임식에서 “재판과 민원 업무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대법원 예산 자료에 따르면 ‘데이터 기반 사건관리 및 재판 지원을 위한 AI 분석모델 구축 계획’ 항목에 3억2000만원, ‘양형기준 운영점검 시스템 및 양형정보 시스템 고도화를 위한 AI 시스템 구축 계획’ 항목에 3억9200만원 예산이 배정됐다. 현재는 개발 계획 수립 단계다. 대법원은 구체적 사업계획이 수립되면 내년도 예산을 신청해 실제 시스템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재판 지원 AI는 당사자들이 제출한 방대한 서면 등을 요약하거나 주요 쟁점을 자동 제시하는 식으로 재판 업무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법관을 보조하는 재판연구원의 업무를 일정 부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현재는 판결보다 조정·화해에 적합한 사건을 판사들이 일일이 기록을 읽어보고 판단한 뒤 조정센터로 보내는데, 이 같은 작업을 AI가 대신하게 될 수 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양형기준 수립에 필요한 판결문 분석 및 법관들에게 사건 죄명, 법령, 양형기준 등을 자동으로 반영해 제시하는 AI 시스템 구축을 계획 중이다. 2007년 양형위 출범 후 16년간 양형기준 설정 범죄군이 46개로 늘었는데, 지금은 적용 법조문을 찾아보고 형을 가중·감경하는 작업을 모두 사람 손으로 한다. AI 자동화로 작업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경제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양형 통계를 시각화해 제공하는 시스템도 가능하다.

법관들은 AI가 형식적 업무에 들이는 시간을 줄여주면 신속한 재판 진행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법원 내 AI 전문가로 꼽히는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최근 “법원 내부에만 존재하고 비공개 중인 수많은 판결문과 각종 실무 논문자료 등을 내부용 판결 작성 도우미 AI에게 학습시켜 법관에게 제공하자”고 제안했다. AI 도입이 재판 지연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강 부장판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지금은 판사가 숙고해 결론을 내리는 데 30%, 판결문 작성에 70%의 에너지를 쓰는데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AI가 문서 작업시간을 줄여주면 판사는 최종 결정을 신중하게 하는 데 더욱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제 AI가 상용화되면 판결문 작성 속도가 2~3배는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고등법원 부장판사도 “특히 최근 새롭고 복잡한 유형의 사건이 많아져 검색을 잘하는 일이 중요해졌는데, AI가 활용된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AI 지원 재판이 확대되더라도 유·무죄 판단 등 결론까지 제시하는 건 시기상조라는 의견이 대체적이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최종 양형 결정이나 판결서 초안 작성 등을 AI에 의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판사가 판결문을 직접 쓰는 데 있어 유의미한 차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판 당사자들이 AI가 접목된 재판을 어디까지 받아들일 수 있을지도 문제다.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인 최경진 가천대 교수는 “AI가 낸 오류가 결과적으로 판결 오류로 이어진다면 많은 비판이 제기될 것”이라며 “AI 신뢰도가 상당히 올라가야 실질적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한 판사는 “알고리즘 제작 과정에서 법원이 독립성·신뢰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장인 이성엽 고려대 교수는 “AI의 보조를 받은 판결에는 AI가 어디까지 쓰였는지 분명히 밝히고 가치판단 영역은 사람이 했다는 걸 명확히 하면 된다”며 “AI와 판사가 할 일을 명확하게 선을 긋는 것도 의미 있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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