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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바른 말과 막말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엄마, 아빠 미안해’. 얼핏 듣기엔 별것 아니지만 온라인 게임 세상에선 알고 보면 무시무시한 말이다. 치열한 게임에서 조금이라도 뒤처지거나 실수를 저지르는 유저에겐 상대 팀은 물론 같은 팀원조차 채팅창으로 부모를 들먹이며 막말하는 ‘패드립’(패륜 드립)이 쏟아지는데, 이런 저급한 문화를 풍자할 때 쓰인다. 그러니까 ‘제가 게임을 잘하지 못해서 엄마 아빠를 욕보이게 했어요. 죄송해요’라는 뜻 정도 되려나.

이 말은 올 초 게임사 넥슨의 온라인 슈팅 게임 ‘서든 어택’이 바른 말이 오가는 게임 문화를 선도하겠다며 선보인 캠페인 영상의 제목이기도 하다. 영상은 인터넷 최대 부작용 중 하나인 익명의 언어폭력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 화제를 모았다.

영상 속에서 아영은 PC방에서 게임을 제대로 못한다고 원훈에게 ‘너희 엄마 MBTI 검사하려고 병원 가심’ ‘너희 엄마 과일 겁나게 못 깎으심’이라며 비난한다. 그러자 진짜 원훈의 엄마가 예쁘게 깎은 과일을 들고 뿅! 하고 나타나더니 ‘평소 내 안부 많이 묻는다지? 덕분에 아줌마 아주 잘 지내고 있어’라고 따뜻하게 말한다. 원훈은 ‘님네 아버지 계산하기 싫어서 신발 끈 묶음’이라거나 ‘님네 아버지 휴대전화 오래돼 지문 인식 안 됨’이라고 쏘아붙이는데 이번엔 아영의 아빠가 홀연히 나타나더니 햄버거 사 먹으라고 5만원을 건넨다. 비록 휴대전화 패턴은 여러 번 풀지 못했는지 ‘17시간 뒤 열림’에 걸리긴 했지만.

원훈의 엄마와 아영의 아빠는 아이들에게 친절을 베푼 것도 모자라 아이들이 자신의 안부를 묻는다며 기특해한다. 그러자 원훈과 아영은 그동안 생각 없이 막말한 것을 후회하고 오열한다는 내용이다. 영상 댓글에는 “스킵 없이 다 본 광고는 오랜만이다”라거나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죄송한 마음이 든다”는 칭찬이 굴비 엮이듯 마구 달렸다.

서든 어택의 캠페인이 온라인 게임에서 바른 말의 소중함과 따스함을 환기했다면 힙합 세상에서도 바른 말로 우리의 귀를 녹여준 래퍼가 있다. ‘고등래퍼 2’에서 우승한 하온(본명 김하온)이다. 귀에 착착 꽂히는 가사 전달력과 속도감 넘치는 랩을 구사하면서도 긍정적인 가사와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중년 아재마저 사로잡은 주인공이다. 욕설을 하지 않는 래퍼로도 유명했는데 그의 곡 ‘밋미앳더탑’을 들어보면 ‘쓸데없는 욕 좀 빼, X팔리게 하지 말고. 이 친구들 입에 비누 물려야겠어’라는 가사가 나온다. 하온의 바른 말은 그가 쓴 ‘가상 유서’에도 잘 드러나는데, 막말과 증오에 찌든 우리에게 감동마저 선사한다.

‘사람들이 삶 안에서 자유를 얻고 / 그 자유 안에서 서로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 그로 인해 얻은 평화로 / 모두가 행복한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며 글을 마친다. // 나 이제 왔던 것처럼 돌아가며 발걸음엔 망설임이 없다. / 다음 생엔 울창한 숲의 이름 모를 나무로 태어나 / 평화로이 살다가 누군가의 유서가 되고 싶다. / 안녕 그리고 평화!’

선거철이 되자 정치권도 막말의 악습을 끊겠다고 나섰다. 국민의힘은 막말로 증오를 부추긴 공천 희망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했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은 극단적인 혐오 언행을 하는 이들은 당에 있을 자격이 없다고 공언했다. 민주당도 막말과 설화, 부적절한 언행을 엄격하게 검증해 공천 심사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이다.

막말이 횡행하니 어느새 바른 말이 신기한 세상이 됐다. 부디 이번 총선에선 증오와 저주 대신 희망과 긍정의 말을 하는 후보가 뽑히길 기대한다. 아영의 아빠나 원훈의 엄마처럼, 혹은 명상으로 길어낸 긍정의 가사로 우리 가슴을 따스하게 데워준 래퍼처럼.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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