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이 없어요, 이제 야구 못합니다” 군산의 눈물

[운동장이 비어간다] ① 흔들리는 야구 뿌리

60년 역사 군산 중앙초 결국 해체
김성한·정대현 배출한 호남 명문
初야구부 2014년 101→ 84개로 뚝

입력 : 2024-01-16 00:02/수정 : 2024-01-16 17:08
중앙초 운동장 한 켠에 있는 손수레에 야구공이 한가득 쌓여 있다. 5명이었던 야구부원은 지난해 모두 떠났다. 군산=권현구 기자

“더 할 말이 없더라고요. 없는 사람을 어디서 구하겠어요?”

초창기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타자였던 김성한 해설위원은 15일 전화기 너머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지난해 말 후배들의 부탁을 받고 모교인 전북 군산 중앙초를 찾았다. 60년 역사의 야구부가 해체 수순을 밟는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학교 관계자와 대화했지만 뾰족한 대안은 못 찾았다. “학생이 없는데 어떻게 하느냐, 야구부 시설물도 있는데 방치해둔 채 한없이 기다릴 순 없지 않으냐는 겁니다.”

지난 연말 통계청은 장래인구추계를 통해 올해 합계출산율을 0.68명으로 전망했다. 초저출생의 충격파로 한국 스포츠의 균열은 이미 시작 단계로 접어들었다. 특히 ‘뿌리’인 유소년 스포츠가 흔들리고 있다. 스포츠지원포털에 따르면 2014년 101개였던 초등학교 야구부 수는 해마다 줄어 지난해 84개가 됐다. 스포츠클럽까지 포함한 12세(종전 13세) 이하부 선수는 같은 기간 4316명에서 3804명으로 감소했다. 지역별로는 전북 상황이 특히 열악했다. 팀은 4개인데 선수는 47명이었다. 평균 12명이 채 안 됐다.

중앙초가 대표적이었다. 지난해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등록된 중앙초 야구부 선수는 총 5명(새학기 기준)이었다. 이들 중 8월까지 남은 이는 한 명도 없었다. 개학 직후 2명이 팀을 떠났고, 1학기를 마친 뒤 남은 3명도 나갔다. 최고참 정우(가명·13)는 서울 소재 초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중학교 때 상경할 계획이었으나 앞당겼다. 4학년 동갑내기 영민(가명·11)과 진수(가명) 역시 중앙초를 떠났다. 정우 아버지 A씨(49)는 “(중앙초) 여기선 대회에 못 나가지 않느냐”며 “경기를 할 수 있는 곳으로 간 것”이라고 말했다.

군산 야구에도 황금기는 있었다. 1970, 80년대엔 호남 야구의 산실로 통했다. 지금은 군산상일고로 간판을 바꿔 단 군산상고 야구부가 그 중심에 있었다. 1968년 창단해 4년 만인 1972년 황금사자기 결승에서 부산고를 5대 4로 꺾고 우승했다. ‘역전의 명수’란 별명이 이때 생겼다.

중앙초도 한 축을 담당했다. 햇수로 따지면 군산상고보다 5년 이른 1963년 야구부를 창설했다. 이후 김성한과 정대현 신경현 이대수 등 프로야구 스타들이 여럿 교정을 거쳤다. 김 위원은 “전교생이 3000명이었던 시절”이라며 “시멘트 포대를 글러브, 공사판 각목을 배트 삼아 뛰어놀던 동네 아이들에게 야구부는 선망의 대상이었다”고 말했다.

‘영광의 시대’를 끝낸 건 인구 감소였다. 한 번 속도가 붙자 멈출 줄 몰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0년 군산의 0~12세 주민등록연앙인구는 4만9940명이었다.

이는 2022년 2만6654.5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군산 인구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같은 기간 17.9%에서 10.1%로 급감했다. 합계출산율 또한 1.604명에서 0.877명이 됐다.

설상가상 도심 공동화까지 찾아왔다. 신시가지 조성과 함께 외곽 아파트 단지로 인구가 빠졌다. 구도심 복판에 있는 중앙초는 여파를 정통으로 맞았다. 전교생이 200명 안팎으로 줄었다.

야구부도 따라 부침을 겪었다. 2015년 9월 부임한 오장용 감독에게 떨어진 최우선 과제는 신입 모집이었다. 반년 뒤면 부원 12명 중 9명이 졸업할 터였다. 그가 찾은 해법은 발로 뛰는 것이었다. 등하교 시간에 맞춰 명함과 전단지를 들고 야구부가 없는 지역 내 학교를 전전했다. 육상대회도 찾아다녔다.

군산 중앙초 야구부 오장용 감독이 수비 연습을 위해 배트로 공을 쳐 주는 ‘펑고’ 훈련을 하는 모습. 오 감독은 선수를 모으기 위해 발로 뛰었지만 인구 감소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군산=권현구 기자

다행히 10월 중순까지 목표 인원을 채웠다. 이후로도 해마다 10명 안팎을 모집하며 야구부 명맥을 이어갔다. 정우는 마트 앞에 나붙은 전단지를 보고 빙그레 이글스 팬이었던 부친을 졸라 야구를 시작했다. 영민은 친형과 멀리 던지기 내기를 하다 오 감독 눈에 들어 스카우트됐다. 진수는 또래보다 큰 체격을 이유로 아버지 손에 이끌려 입단 테스트를 봤다.

시련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왔다. 한 달 뒤엔 코로나19가 대구·경북을 휩쓸었다. 각종 대면 행사가 줄줄이 취소·연기됐고 학교 수업은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신입 부원 모집은 뚝 끊겼다. 2020년 20명에 육박했던 부원 수는 2022년 10명으로 줄었다. 그마저도 이듬해 6학년들이 빠지면서 3명까지 감소했다. 정규 경기를 못 치른 지는 넉 달이 넘어갔다.

오 감독과 학교 측의 결정은 부원 상시 모집이었다. 도 대회 참가를 위해선 9명, 전국 대회에 나가려면 10명을 확보해야 했다. 오 감독은 직접 스카우트에 나섰고 야구부 담당 교사는 인근 학교들에 모집 공문을 보냈다.

야구교실 개설도 노력의 일환이었다. 야구에 관심은 있지만 전학이 부담스러운 타 학교 학생들을 위해 취미반을 열었다. 방과후 강사비는 수익자 부담이 원칙인 탓에 총급여가 반토막 났지만 추가로 매 주말 10명 안팎의 아이들을 무료로 가르쳤다.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두 달 넘게 취미반을 운영했으나 한 명도 정식 입부하지 않았다. 오 감독이 권유차 만난 학부모들에겐 저마다의 이유가 있었다. 운동으로 성공하지 못하면 살길이 막막하다는 인식이 대표적이었다. 취미반 소속 주현(가명·11)이는 “꿈이 야구선수인데 엄마가 싫어한다”며 “진짜 할 거면 목숨 걸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경제적 부담도 빠지지 않았다. 월 30만원 수준의 비용이었지만 코로나19로 불경기가 찾아온 상황에선 적잖은 부모들이 부담을 토로했다. 중장기적으로 따지면 설득하긴 더 어려워졌다. 상급학교로 갈수록 돈이 더 들기 때문이다. 중학생 아들을 야구클럽에 보내고 있는 B씨 부부는 “원래 야구부 회비와 영양제 등 각종 관련 비용을 합쳐 다달이 50만원 정도를 썼다”며 “중학생이 된 뒤로 지출이 2.5배로 뛰었다”고 설명했다.

사설 레슨은 기본이 된 세태도 무시할 수 없었다. 비수도권인 군산은 사정이 나았지만 추후 수도권으로 전학을 보낼 경우까지 고려하면 비용 부담이 크게 불어났다. A씨는 “수도권에선 초등학생들도 전부 레슨을 받는 실정”이라며 “펑고 한 시간에 10만~20만원을 받는 곳도 있다더라”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다. 김 위원은 “중앙초는 군산 야구의 뿌리 중 하나”라며 “초등학교 3개-중학교 2개-고등학교 1개 구조에서 아랫돌이 하나 빠진 격”이라고 지적했다. 교육청 관계자는 “전체 인구, 특히 학생 수가 많이 줄었다”며 “유독 전북의 타격이 큰 측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2022년 기준 전북의 합계출산율은 0.817명으로 서울·세종과 광역시를 제외한 9개 도 중 가장 낮았다.

교육청은 해체 전의 중앙초 야구부처럼 당장 대회에 출전할 수 없는 상황이더라도 최대한 지원을 유지한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학교 연계형 스포츠클럽으로 전환할 길 역시 열어뒀다고 강조한다. 이 경우 지도자가 개인사업자 신분으로 클럽을 운영하는 만큼 타 학교 학생들도 자유롭게 받을 수 있다. 교육청은 이와 관련해 훈련비 등을 적극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관계자는 “선수 수급에 차질이 생긴 건 이미 수년 전”이라며 “발맞춰 클럽 전환이 이뤄졌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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