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전용대 (28) 직장암 투병 중 일본 집회 강행… 탈장으로 실신까지

암 판정 후 방사선 치료 날짜 기다리던 중
일본 노숙자 선교 단체 희망선교회 집회
투병 중이지만 도저히 포기가 안 돼 참석

전용대 목사가 지난해 5월 1차 항암 치료를 받은 뒤 서울의 한 병원에서 회복 중인 모습.

“다리도 불편한데 암까지. 하나님이 너무 원망스럽지 않으세요?” 직장암 투병 소식이 알려진 후 사람들에게 종종 듣게 되는 질문이다. 내 답변엔 주저함이 없었다. “하나님 성전인 몸을 관리하지 못한 제 잘못인데 하나님께 어떻게 원망을 합니까. 그저 매일 매 순간 감사입니다.”

가족력도 없었기에 암이 내게 찾아올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다. 건강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가족을 향한 미안함, 준비돼 있지 않은 재정이 늘 마음에 쓰였다. 그동안 주의 종 아내로 많은 어려움 중에도 묵묵히 기도로 살아온 아내, 장애가 있어 불편한 몸 때문에 제대로 놀아주지도 못하고 하고 싶은 것도 못 해줬는데 투병 생활에 대한 아픔을 줘야 했던 두 딸이 가슴에 사무쳤다.

지난해 3월 초, 암 판정 후 방사선 치료를 먼저 하기로 하고 치료 날짜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집회들은 다 내려놓을 수 있었지만 일본에서 열리는 노숙자 선교단체 희망선교회의 초청 집회는 도저히 포기할 수 없었다.

기도로 준비한 집회를 무사히 마친 후 귀국을 앞둔 아침,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숙소에서 기절했다 깨기를 네 차례나 반복하는 아찔한 상황이었다. 연락이 닿지 않아 위급하게 숙소로 들어온 스태프들의 도움으로 다행히 몸을 추슬렀다. 직장암 여파로 탈장이 일어난 거였다.

극적으로 비행기에 탑승한 뒤 고통을 참으며 김포국제공항에 마중 나온 아내와 함께 곧바로 신촌 세브란스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의료진은 탈장된 부분의 원상 복귀를 시도했지만 쉽지 않았다. 결국 나는 수술대에 올라야 했다. ‘주님, 주의 종의 몸은 주님 것이니 예비하신 계획대로 보살펴 주소서.’

수술 후 병실로 옮겨진 내가 천천히 눈을 뜨자 집도하신 교수님이 말했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잘 됐습니다. 일본에서부터 탈장된 부분에 상처 없이 귀국한 것이 기적이었습니다.” 생명에 치명적인 상황에 놓이지는 않았지만 결국 영구적으로 항문을 닫고 장루를 설치해야 했다.

소식을 들은 주변에선 걱정이 앞섰다. 영구 장루를 설치하고 나면 오랫동안 밖에 나가지 못한 채 요양생활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들렸다. 이번에도 주님은 내게 당면한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마음을 허락하셨다. 하지만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과 가족을 향한 미안함은 별개의 문제였다.

한쪽 다리에 힘이 없어서 회복에도 어려움이 따르는 병실에서의 생활은 고스란히 아내의 고생으로 이어졌다. 묵묵히 병간호하며 병원비 걱정까지 하는 아내를 바라볼 때마다 그동안 사역자의 아내로 뭐 하나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미안함에 눈물만 쏟아졌다.

일반 환자보다 다리가 불편한 나의 회복 시간은 더딜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치료에 임하는 내게 의료진들은 용기와 위로를 줬다. 그리고 부족한 종의 든든한 지원군이 돼 주시는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 특히 전용대를 응원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 ‘나 주와 살리, 쾌유를 위한 콘서트’를 준비해 준 CCM 찬양 사역자들을 생각하면 말로 못다 할 감격을 느낀다. 퇴원이 가까워오며 병원비 걱정을 붙들고 있을 땐 이번에도 윤석전 연세중앙교회 목사님이 해결사로 나서주셨다. 그렇게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지고 퇴원을 했다.

정리=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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