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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간병 걱정 없는 나라

정형선(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과)


정치인들이 나섰다. ‘간병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단다. 관료들은 화답한다. 화려한 그림이 보인다. 국민은 혹한다. 아니 이런 ‘천국’이 왜 이제야. 좀 더 생각하니 다시 의문이다. 근데 정말 오긴 오나?

고령사회에서 가족, 친지, 지인 중에 병원 신세 지는 이 없는 사람 있을까. 뇌졸중, 암으로 입원하는 사람이 생기면 보호자의 고민이 시작된다. 간병을 직접 못하면 간병인을 돈 주고 구해야 한다. 퇴원했다고 끝이 아니다. 돌봐줄 사람이 없으면 다시 ‘요양병원’에 들어가야 한다. ‘공동 간병’을 써도 환자당 하루 10만원, 한달 300만원은 보통이다. 해가 지나면서 평생 모은 돈은 소진되고, 주변에 ‘간병독박’을 강요하는 신세가 된다. 마지막을 요양병원에서 보내다 생을 마감하는 어르신이 부지기수다. 본인 삶의 질은 말할 것 없고 가족의 삶도 황폐해진다. ‘간병살인’, 이웃 일본의 얘기가 아니다.

정부 발표안을 세밀히 들여다보니 흐릿한 ‘밑그림’뿐이다. 앞으로 세부안을 만들어가겠다는 것이다. 그래도 실행할 수 없는 것을 약속하는 것보단 낫다. 틀린 방향을 급히 확정해버리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밑그림’ 완성에 도움이 될 대안을 생각해본다.

첫째, 일반 병원은 모두 ‘보호자 없는 병원’으로 운영하자. ‘간병’은 병원 제공의 ‘입원’에 포함된다. 간병 인력의 고용 비용은 건강보험의 입원료 수가에 반영한다. 간병비를 사비로 부담하는 현재보다는 환자의 부담이 준다. ‘일부 병동’에서 시범적으로 시작된 2015년만 해도 병원의 간호 인력은 인구 1000명당 5.9명에 불과했다. 지금은 8.8명으로 OECD 평균 9.2명에 근접한다. 메르스에 이어 코로나19까지 겪었다. 같은 병원 안에서 ‘일부 병동’만 지정하는 엉터리 방식의 ‘간호·간병 통합 서비스’ 확대는 인제 그만. ‘병원 보호자 금지’의 전면 시행 시점을 못박고, ‘병원’ 단위의 적용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참고로 일본은 지금의 우리보다 고령인구 비율이 낮고 간호 인력도 적었던 1997년에 ‘보호자 금지’를 달성했다.

둘째, ‘요양병원’ 간병비는 요양병원의 단계별 재편과 병행해 해결하자. 1500개나 되는, 온갖 종류가 뒤섞인 전체 요양병원에서 발생할 간병비를 그대로 사회가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선 회복기 재활, 암 관리, 종말기 관리 등 의료적 특성을 갖는 ‘만성기’나 ‘아급성기’ 요양병원만 남기고 ‘생활 기능’을 주로 하는 ‘중간 기관(intermediary institution)’을 분리한다. 정부 발표안의 ‘의료요양원’이라는 이름도 좋다. 앞엣것은 건강보험 재원인 ‘보호자 없는 병원’의 대상이다. 뒤엣것은 ‘장기요양보험’ 수급자 중에서 입원과 간병의 필요도가 높은 환자만을 대상으로 한다. 지금의 요양시설(요양원)은 ‘장기요양보험’에서 입소 필요성이 판정된 어르신이 ‘생활’하는 곳이다. 이분들도 간호 수요를 갖기 때문에 ‘간호 유닛 케어’, ‘급성기 이송’, ‘방문의료’가 제공돼야 한다.

셋째, 의료적 수요가 어느 정도 있는 환자도 가정에 머물 수 있는 환경이 돼야 전체 그림은 완성된다. 방문의료, 방문간호 등 제공체계의 변화는 시간이 걸린다. 의료법, 간호법 등 의료체계 전반에 걸치기 때문이다. 정부 발표안도 ‘의료기관별 간호간병통합서비스’, ‘의료요양원’, ‘재택의료센터’, ‘방문형간호통합제공센터’라는 핵심을 내비치고는 있다. 하지만 10대 실행 과제에는 빠져 있다.

생로병사는 피할 수 없겠지만 비용 부담 때문에 ‘간병’을 못 받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정치인들이 그리는 환상의 ‘천국’을 개혁의 동력으로 활용하되 현실적 대안을 만들어 실현해가는 것은 정책 당국의 몫이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정형선(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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