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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선거제 개편·선거구 획정도 없이 출발한 총선

국민일보DB

내년 4월 총선 지역구 예비 후보자 등록이 오늘부터 시작된다. 예비 후보가 되면 공식 선거운동 기간 전이라도 일정 범위 내에서 선거운동을 할 수 있어 사실상 선거전이 막을 올리는 셈이다. 120일간의 총선 일정에서 중요한 획을 긋는 날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 후진 정치의 단면을 그대로 노출시킨 출발이라 유감스럽기 짝이 없다. 후보 등록이 개시됐음에도 아직도 선거구를 획정 짓지 못해 ‘깜깜이’ 선거운동이 불가피해져서다. 공직선거법상 국회는 선거 1년 전에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 그러나 거대 양당이 합의를 미루면서 8개월째 위법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여야 협상에 진척이 없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지난 5일 서울·전북에서 지역구 1석씩 줄이고, 인천·경기에서 1석씩 늘린 획정안을 제시했지만 이를 놓고서도 제대로 된 협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치 신인은 선거구가 획정되지 않으면 어느 지역구에서 예비 후보로 등록해야 할지 몰라 활동에 제약이 따른다. 특히 선거일을 얼마 안 남기고 획정되면 신인은 얼굴을 알리기도 힘들다. 획정이 늦어질수록 현역 의원들만 유리해진다. 선거구는 19대 총선 때 선거 44일 전, 20대 때 42일 전, 21대는 39일 전에 획정됐는데 이 정도면 거대 양당이 암묵적으로 지연 전략을 펴왔다고 봐도 무방할 테다.

이에 더해 아직 선거제 개편 작업이 끝나지 않은 것도 거대 양당의 ‘총선 짬짜미’로 의심된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총선에 적용할 비례대표 배분과 위성정당 방지 여부에 대해 여전히 합의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지난 대선 때 위성정당을 막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정착시키겠다고 공약했지만 여당이 반대한다는 핑계를 대며 협상에 꾸물거리고 있다. 거대 양당이 협상에 소극적인 것은 소수야당들의 선거연합이나 제3세력의 신당 창당을 견제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도 비친다. 선거제가 정해져야 연합 형태나 창당 방향이 결정되고 결집도 가시화될 텐데, 지금처럼 어정쩡한 상태가 지속되면 연합·창당 작업에 탄력이 붙기 어렵다.

양당의 행태는 투표할 선거구와 후보를 가림으로써 유권자의 참정권을 침해하고, 연합·창당을 통한 정치적 결사를 방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정신에도 위배된다. 민주 정당을 표방한다면 다른 일은 제쳐놓더라도 선거구를 획정하고 선거제 개편을 최우선으로 마무리해야 하는 이유다. 합의가 더 늦어진다면 국민들 사이에서 양당에 대한 회의감이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팽배해질 것임을 명심해야 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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