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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세계의 실체는 ‘관계의 그물망’이다

[책과 길]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카를로 로벨리 지음, 김정훈 옮김
쌤앤파커스, 256쪽, 1만8000원

전자는 원자핵 주위를 돌면서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도약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우리는 전자의 궤도나 움직임을 볼 수 없고, 전자가 도약할 때 방출하는 빛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양자역학은 관찰 가능한 빛의 강도와 진동수에만 근거해서 전자의 움직임을 다시 설명하자는 발상에서 태어났다. 쌤앤파커스 제공

원자는 모든 것의 기본 구성 요소다. 이 원자는 어떻게 작동할까? 그 안에서 전자는 어떻게 움직일까? 닐스 보어는 전자가 원자핵 주위를 특정한 궤도로만, 원자핵으로부터 특정한 거리에서, 특정한 에너지로만 돈다고, 그리고 마술처럼 한 궤도에서 다른 궤도로 점프한다고 가정했다. 이것이 원자 현상을 잘 예측할 수는 있었으나 전자를 특정한 궤도와 특이한 도약으로 유도하는 힘이 무엇인지는 찾아낼 수 없었다.

보어 밑에서 이 문제를 연구하던 스물 세 살의 청년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1925년 여름, 북해의 외딴 섬 핼골란트(Halgoland)에서 전자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바꿔보자는 획기적인 발상을 떠올렸다. 보이지 않는 것, 그러니까 전자가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물체라는 생각과 전자의 움직임을 기술하려는 생각을 버리자, 그리고 관찰할 수 있는 것, 즉 전자가 방출하는 빛의 강도와 진동수에만 근거해서 설명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 발상을 통해 그는 전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다. 전자의 위치, 속도, 에너지 등 모든 양을 숫자가 아니라 숫자 표로 기술하는 방법이었다. 이 새로운 계산법은 보어의 가설과 정확히 일치했다.

“하이젠베르크, 보른, 요르단, 디랙의 계산 방식, 즉 ‘오직 관찰 가능한 것에만 국한’하고 물리적 변수를 행렬로 대체한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는 아직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그 이론은 세계에 대한 이론 가운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오류도 없고 지금도 그 한계를 알지 못하는 유일한 근본 이론입니다.”

세계에 대한 유일한 근본 이론, 이것이 양자론이다. ‘양자(quanta)’는 물리량이 취할 수 있는 최소량을 말한다. 양자론은 분자, 원자, 전자, 소립자 등 물리 세계의 가장 미시적인 규모에서 운동과 에너지 등을 연구한다. 양자 물리학은 현대 과학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다. 원자폭탄에서 양자 컴퓨터, 원자력발전소에 이르기까지 최신 기술의 기초가 된다.

이탈리아 태생의 세계적인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가 쓴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은 양자 물리학을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풀어준다. 양자 물리학이 태어나던 순간으로 데려가고, 양자 물리학의 핵심 개념들을 설명하고, 이 이론이 세계를 보는 눈을 어떻게 바꿔놓았는지 알려준다.


그는 양자 물리학을 “사물의 실재와 속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고 간명하게 요약한다. 양자 물리학에 의한 새로운 해석이란 이런 것들이다. “세계는 연속적이지 않고 입자로 되어 있습니다” “사물의 속성은 그 사물이 다른 사물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물의 속성은 다른 사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만 존재합니다” “미래는 과거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세계는 확률적인 것입니다”….

양자 물리학은 세계를 입자성, 불연속성, 상호작용, 얽힘, 불확정성, 확률 등으로 파악하는데, 이는 우리가 세계에 대해 이해하고 있거나 상상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저자는 “우리는 보통 세계를 큰 규모에서 보기 때문에 이 세계의 입자성은 보이지 않는다”면서 “분자 규모에서 보면, 강철 검의 날카로운 칼날도 폭풍우 치는 바다의 가장자리처럼 거칠고 비뚤배뚤한 것이 된다”고 말한다.

“고전 물리학적 세계상은 그저 우리가 근시안적이기 때문에 견고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고전 물리학의 확실성은 단지 확률일 뿐입니다. 옛 물리학이 제공해온 선명하고 견고한 세계의 이미지는 사실 환상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 세계가 어떤 모습이라는 것일까. 저자는 “우리가 ‘실재’라고 부르는 세계는 상호작용하는 실체들의 광대한 네트워크”이며 “이 세계는 확정된 속성을 가진 대상들의 집합이 아닌 관계의 그물망”이라고 설명한다.

“이 세계는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촘촘한 그물망이다. 대상은 처음부터 고유한 속성을 지닌 자립적인 실체가 아니라 다른 대상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관련 속성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관계적 존재다. 사물의 속성은 대상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물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존재하며, 상호작용하는 대상이 달라지면 속성도 달라질 수 있는 두 대상 사이의 관계다.”

카를로 로벨리는 현대 물리학을 가장 쉽고 아름답게 풀어내는 작가로 유명하다. 2015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출간한 ‘모든 순간의 물리학’은 유럽 전체에서 100만부 이상 판매됐다. 이후 최신 물리학의 우주 이해를 담아낸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 현대 물리학이 시간에 대해서 알아낸 것을 정리한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출간했다. 이 세 권은 모두 국내에서도 출판됐고, 과학분야 스테디셀러로 자리잡았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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