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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김민기와 학전이 남긴 것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극단 학전을 이끌어 온 김민기에게는 작곡가, 작사가, 편곡가, 가수, 연출가 등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무엇보다 1970~1980년대 포크음악 싱어송라이터로서 ‘아침이슬’을 필두로 ‘친구’ ‘상록수’ ‘작은 연못’ 등 수많은 저항가요를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독재 정권이 금지한 그의 노래들은 오히려 불멸의 생명력을 가지게 됐다. 여기에 공장, 공사장, 농촌, 탄광촌, 양식장 등에서 노동자로 일한 그의 삶은 노래의 의미를 강화했다. 하지만 김민기는 저항가요만으로 자신을 이야기하거나 주변에서 신화적 존재로 추앙받는 것을 싫어했다.

어쩌면 김민기가 ‘김민기답게’ 활동한 것은 1991년 3월 15일 대학로에 학전 소극장을 개관하면서부터 아닌가 싶다. 한자로 배울 학(學)에 밭 전(田)자를 쓰는 학전 소극장은 그가 뿌리내린 일터였다. 일각에서는 ‘비판적 시대정신’으로 불리던 그가 소시민적 삶에 안주했다며 비판했지만, 그는 “일하는 것이 즐겁다”고 피력했다.

그는 김광석 들국화 유재하 강산에 동물원 안치환 등 통기타 가수들의 라이브 콘서트 무대로 학전 소극장을 내줬다. 평소 노래 부르는 것을 꺼리던 그가 1993년 39곡을 직접 부르고 녹음한 전집 음반을 낸 것도 적자가 누적되던 학전 소극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결과적으로 이 음반은 후대에 큰 유산으로 남았을 뿐만 아니라 김민기가 오랫동안 천착했던 노래극을 발전시켜 다양한 뮤지컬을 만드는 재정적 토대가 됐다.

대표작 ‘지하철 1호선’의 경우 창작 뮤지컬로 아는 사람들도 있지만, 엄밀히 말해 수입 라이선스 뮤지컬이다. 독일 아동·청소년 전문 극단 그립스의 뮤지컬 ‘1호선’을 우리말로 번안했다. 하지만 원작을 과감히 해체하고 1990년대 서울의 다양한 면면을 녹여냄으로써 한국의 뮤지컬로 재창조해 성공했다.

‘지하철 1호선’의 장기 공연은 학전 소극장을 회생시키는 것은 물론 한국 뮤지컬 시장의 확장에 기여했다. 여기에 김민기의 독특한 연기 지도가 겹치면서 극단 학전은 배우 사관학교가 됐다. ‘독수리 오형제’로 불리는 설경구 김윤석 장현성 황정민 조승우를 비롯해 스타 반열에 오른 수많은 배우가 학전 출신이다. 김민기는 그립스 극단의 작품을 가져와 한국 실정에 맞게 재창작한 ‘고추장 떡볶이’ ‘우리는 친구다’ ‘무적의 삼총사’ 등을 통해 고사 직전이었던 어린이·청소년극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극단 학전은 2008년 ‘지하철 1호선’ 4000회를 끝으로 공연을 중단했다가 10년 만인 2018년 재개했다. 이후 1~2년마다 ‘지하철 1호선’을 두 달 정도 올리고 있는데, 나머지 기간은 어린이극으로 채워졌다. 다만 어린이극만으로 극장의 수지를 맞출 수 없어 그동안 김민기의 개인 저작권료를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3년간 한국 문화예술계의 산실 역할을 해 온 학전 소극장이 내년 3월 15일 문을 닫는다. 재정난 외에 김민기의 암 투병이 결정적 요인이 됐다. 학전은 이달 말까지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마지막으로 올린 뒤 내년 1월 ‘김광석 노래 다시 부르기’ 등의 콘서트를 이어갈 예정이다. 그리고 2월 28일부터 폐관 전날인 3월 14일까지 학전과 인연 깊은 가수와 배우들이 릴레이로 무대에 서는 ‘학전 어게인’ 프로젝트를 개최하기로 했다.

학전 소극장의 폐관을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극장이 없어지더라도 김민기와 학전의 정신을 이어갈 방법은 없을까.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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