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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반, 알 반’… 맛과 낭만이 넘치는 초겨울 포구

양미리·도루묵의 고장 강원도 속초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 아바이마을 앞 해변에 조성된 하트와 큐피드 화살 조형물을 통해 본 등대 주변으로 아침 해가 찬란하게 떠오르고 있다. 하얀 등대 오른쪽 등대를 품은 섬은 조도(鳥島)다. 속초8경에 속하는 조도는 새들이 찾는 아름다운 무인도다.

겨울은 신체리듬을 잃기 쉬운 계절이다. 보양이 필요한 시점이다. 요즘 강원도 속초 등 동해안에 도루묵·양미리가 한창이다. 구이도 좋고, 찌개도 일품이다. 도루묵은 수심 10m 안팎에서 잡히는 ‘알배기’가 으뜸이다. ‘살 반, 알 반’이라는 도루묵구이는 뜨거울 때 손으로 들고 후룩후룩 먹어야 제격이다.

속초항에는 방금 잡은 양미리를 구워 먹는 포장마차가 즐비하다. 날씨가 추울수록 속맛이 뜨거워지는 겨울 맛 여행의 또 다른 묘미다.

서해안에서 봄에 잡아 액젓을 담그는 까나리를 동해안에서는 양미리라 부른다. 알을 낳으러 연안으로 몰려오는 초겨울에 그물로 잡는다. 칼슘과 철분, 단백질이 매우 풍부해 구워 먹거나 꾸덕꾸덕하게 말려 간장에 조려 먹는다. 남해에선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가 돌아온다고 하면 겨울 양미리철엔 동해안 부모가 서울로 보낸 자식들을 불러 내린다고 할 정도로 은근하면서도 끌어당기는 맛이 일품이다.

이른 아침 양미리 잡이 어선이 부두로 들어와 그물을 부려놓으면 아주머니들이 능숙한 솜씨로 그물코에 박힌 양미리를 일일이 떼어낸다. 양미리는 어린 새끼 때 모레 밑에 있는 미생물을 먹고 자란다. 이후 성장하면서 곤쟁이와 해초 등을 먹고 20㎝가 넘는 성체가 된다. 모래밭에 몸을 숨기고 있다가 새벽녘에 먹이 활동을 시작한다. 이때 어부들이 펼쳐 놓은 그물코에 걸려 잡힌다. 양미리 잡는 어부들은 새벽 동이 트기 전에 조업에 나선다. 양미리가 꽂힌 그물이 항구로 옮겨지면 아낙들이 양미리를 떼어낸다. 한쪽 포장마차에서는 손님맞이 준비가 한창이고, 부지런한 여행객은 일찌감치 간이 테이블에 둘러앉아 양미리와 도루묵을 굽기 시작한다. 양미리는 저렴한 생선이라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서민의 밥상을 지켜줬다. 크기는 작아도 영양은 풍부한 생선이다.

새벽 일찍 조업해 온 양미리를 내리는 어선.

연탄불 위에 별다른 손질 없이 통째로 올려 두고 굵은 소금으로 간간하게 간을 해주면서 타지 않게 여러 번 뒤집으면 고소한 냄새가 일품이다. 가시를 발라 먹어도 좋지만 통째로 먹는 것이 제 맛이다.

도루묵도 양미리처럼 차가운 물에 서식한다. 동해를 비롯해 캄차카 반도, 사할린, 알래스카 등 북태평양 해역에 주로 분포하며 양미리와 비슷한 시기에 산란을 위해 떼를 지어 동해에 나타난다.

도루묵의 본래 이름은 ‘목어’ 또는 ‘묵어’다. 목(묵)어가 도루묵이 된 데는 사연이 있다. 조선 선조가 피란길에 목(묵)어라는 생선을 먹어 보고는 맛이 좋아 ‘은어’라는 이름을 하사했는데, 전쟁이 끝난 뒤 한양으로 돌아와 다시 맛본 은어 맛이 전과 다르자 밥상을 물리며 “은어 대신 도로 목(묵)이라 하라”고 해서 도루묵이 됐다는 얘기다. ‘헛된 일이나 헛수고’를 속되게 이르는 ‘말짱 도루묵’은 이렇게 해서 생겨난 관용구로 알려져 있다.

속초항 난전에서 맛보는 양미리·도루묵 구이.

도루묵의 특징은 비늘이 없어 비린내가 안 난다는 점. 찌개는 물론 굽거나 쪄도 비린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식도락가들이 도루묵을 찾는 것은 바로 알 때문이다. 알 자체에서는 별다른 맛이 느껴지지 않지만 익히면 겉면에 미끈한 점액이 묻어난다. 입에서 터지는 식감이 좋다.

지느러미와 꼬리 정도만 떼어낸 뒤 고춧가루, 마늘, 파 등 양념에 얼큰하게 끓인 도루묵찌개 한 냄비면 밥 한 그릇이 뚝딱이다. 팬에 무를 깔고 도루묵을 올린 뒤 양파, 마늘, 대파, 양념장을 넣고 조리면 최고의 먹거리 도루묵조림이 된다.

초겨울 별미도 좋은 속초 여행길에는 볼거리도 많다. 속초항과 가까운 동명항은 매일 아침 잡아온 활어를 경매로 구입해 판매하는 활어유통센터가 있어 자연산 활어회를 맛보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속초 8경 중 하나인 속초등대전망대를 비롯해 영금정, 해돋이정자가 동명항 근처에 있다. 청초호수공원에 조성된 해상 정자 ‘청초정’은 포토존으로 사랑받는다.

여행메모
속초항 인근 아바이마을 순대·갯배
대포항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보도육교

양미리·도루묵으로 유명한 속초항 인근에 아바이마을이 있다. 함경도 일대 피란민이 생활 터전을 잡은 아바이마을의 명물은 순대와 갯배다. 아바이순대와 오징어순대가 먹거리 1순위에 꼽힌다. 아바이순대는 찹쌀, 선지, 당면 등을 넣어 만드는데 일반 순대보다 담백하다.

아바이마을에 정착한 실향민들이 시내를 건너기 위해 만들었던 갯배는 속초시를 대표하는 관광 상품 중 하나다. 이곳에도 키오스크 도입으로 이용객이 직접 이용료를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다.

아바이마을에서 갯배를 탄 뒤 5분 정도 걸으면 속초관광수산시장이다. 씨앗호떡으로 시작해 큼지막한 새우튀김, 수수부꾸미, 전병 등 각종 군것질 거리가 오감을 자극한다.

둥근 모양의 대포항을 가로지르는 보도육교.

대포항에는 동그랗게 생긴 대포항을 남북으로 가로질러 만들어진 보도육교가 있다. 한눈에 동해와 대포항을 바라볼 수 있다.

속초는 관광지답게 유명 리조트와 호텔이 많다. 비틀스 멤버 전원의 친필 사인이 담긴 기타, 존 레넌이 즐겨 입던 슈트 등이 전시돼 있는 숙소도 있다.



속초=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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