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 전체기사

[청사초롱] 가까울수록 거리 두기

안지현 변호사


경제는 어렵고 사업은 잘되지 않는다. 부동산이니 주식이니 코인이니 온갖 투자처의 오름세도 꺾였다. 이런 상황에서 점점 늘어나는 사건이 하나 있다. 바로 부모님의 재산을 둘러싼 싸움이다. 여기저기 눈 씻고 찾아봐도 돈 나올 데라고는 거기뿐이라고 판단해서일까. 최근 들어 법원 조정센터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가족들 간 소송이 접수되고 있다.

여동생이 오빠를 상대로 돌아가신 선친의 재산을 빼돌렸다며 형사고소만 6건을 한 사건도 있다. 삼촌과 조카들 간에 서로 땅 지분이 내 것이라고 치열하게 싸우는 사건, 아들이 아버지를 상대로 소송 중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아들이 원고이자 피고의 상속인이 돼버린 사건도 있다. 그 유형도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사건들은 제3자인 나에게까지 그 미움과 고통의 감정이 전이돼 기록을 읽는 자체가 힘들다. 조정실에서도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마 전에는 형제 중 한 명에게 조정 의사를 묻기 위해 전화했다. 그는 다른 형제들을 만나면 낫으로 목을 잘라버리겠다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까지 했다. 이러다 진짜 법원에서 칼부림 사고라도 나는 것 아닌가 싶어 섬뜩했다. 부모님께 물려받을 재산이 없어 형제들끼리 다툴 일이 없다면 오히려 감사해야 할 지경이다.

반대로 부모 쪽에서 자녀 등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경우도 있다. 소위 결혼 시장은 불황이고, 이혼 시장은 호황인 세태에서 생겨나는 새로운 유형의 사건이랄까. 불황인 결혼 시장에서 자식을 결혼시키려면 부모가 신혼집이라도 마련해줘야 하는데 너무 빨리 이혼해버려 문제가 생긴다. 사위, 며느리의 재산분할 요구에 맞대응해 자녀나 사위, 며느리를 상대로 집 명의를 내놓으라거나 보태준 돈을 돌려 달라는 사건이 늘고 있다.

결혼한 자녀가 부모보다 앞서 일찍 세상을 떠난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린 손자와 며느리에게 당장 내 집에서 나가라고 건물명도 소송을 하기도 한다. 왜 이렇게까지 하나. 그 근본적인 심리를 파고들면 자녀가 사위나 며느리 때문에 불행하게 됐다는 원망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기실 그들도 자신과 같이 가족의 불행으로 고통받고 있는데도 말이다.

노모가 아들에게 아파트를 유언으로 증여하기로 했는데 얼마 안 가 아들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올케와 조카에게 부동산이 넘어갈 것을 걱정한 시누이들이 어머니를 설득해 유증을 취소했다. 하지만 며느리는 어머니가 치매로 정신이 온전하지 못한 상태라며 물러서지 않았다. 노령사회, 그리고 그들이 대부분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런 소송은 점점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정신감정을 받으러 병원에 가거나 법정에 서야 하는 일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가족 간에 오랫동안 소송을 해 온 분들과 조정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암이나 심장병 같은 중한 질병에 걸렸다고 고백하는 분이 많았다. 이처럼 가족 간의 갈등은 한 사람의 인생에 오랫동안 깊은 상흔을 남기게 된다. 그런데도 고통스러운 싸움을 멈추지 못하는 그 심정은 무엇일까.

애정과 증오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가족들은 서로 믿고 사랑한 만큼 더 큰 배신감과 미움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것이리라. 한동안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계속됐다. 그 기간 오히려 명절에 가족들이 모이지 않아서 더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다는 사람들의 말이 그냥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가까울수록 서로에게 고통을 주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거리 두기가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

안지현 변호사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