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적 친구를 기다린다
심야 공항 터미널은 지나치게 환하다

그녀에게 이 도시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

순수하기 때문이 아니라, 복잡하고 불완전하며
폐허가 된 건물들의 더미이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파무크처럼 고백할 수 있을까

맞은편 의자에 앉아 통화하는 사람은 미소를 띤다
왼쪽 옆으로는 불매운동중인 제과업체의 체인점이 있다
빵공장 기계에 끼여 숨진 노동자의 얼굴이 어른거리고
플라스틱 빵처럼 내 표정은 굳어 있다

밝은 조명 아래 내 우울이 드러나는 게 싫어서
습관처럼 깊이 눈을 감는다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습격한다
밀려내려가다 꼼짝없이 매몰되었던 사람들
필시 친구는 알고 있을 텐데
이미 소셜 미디어를 통해 경악했을 텐데

…(중략)

말할 수 없겠지
내가 사랑하는 도시라고

트렁크 끌고 공항철도를 타며 말해야 할까
화장실에서는 불법 촬영을 조심하라고

알려줄 것들이 조각케이크처럼 부드럽고 달콤하기만 하다면
이즈음 나는 어두운 방에 나를 가둔 채 발작하지 않았겠지
신경안정제 부작용인지 부은 얼굴로 너를 마중하러 나오지는 않았겠지

네가 예민한 건 아니야
친구가 와서 나를 안아주면
환영한다는 말을 잊지 말아야지

- 김이듬 시집 ‘투명한 것과 없는 것’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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