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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정은 왜 한국인들의 열망을 저버렸나

[책과 길] 1945년 해방 직후사
정병준 지음
돌베개, 454쪽, 2만7000원

1945년 10월 20일 열린 서울 시민 주최 연합군환영대회에서 주한미군사령관이자 군정사령관인 하지 중장(앞줄 가운데)이 소개되고 있다. 하지 왼쪽은 아놀드 군정장관이고, 오른쪽은 하지의 개인 통역이자 비서실장인 이묘목이다. 돌베개 제공

1945년 8월 15일 오후 12시 일본 천황이 항복을 선언했다. 8월 16일 서대문형무소의 옥문이 열렸고, 건국준비위원회(건준)가 출범했다. 해방 공간이 열렸다. 이후 정국은 9월 8일 하지 중장을 사령관으로 한 미군정 시작, 10월 16일 이승만 귀국, 11월 23일 김구 등 중경임시정부 요인 서울 도착, 연말 신탁통치 반대 운동으로 요동치며 흘러갔다.

‘한국전쟁’ ‘몽양 여운형 평전’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 등 한국 현대사 관련 중요한 저작들을 발표해온 정병준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새 책 ‘1945년 해방 직후사’에서 1945년 해방 직후부터 연말까지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상세하게 그려냈다. 특히 미군정이 초기 3개월간 어떤 일을 했는지 밝히면서 해방의 환호가 분노와 절망으로 바뀐 이유를 규명한다.


미군정은 조선총독부를 유임시키겠다고 발표했다가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자 해체했고, 건준이 전환된 인공(조선인민공화국)을 부정하고 지방인민위원회를 해체했다. 또 미군정 예하 최고 대표기관인 고문회의를 반공 보수 우파 중심으로 구성했고, 친일파들을 대거 경찰과 관료로 임용했다. 이어 이승만, 김구 등 해외의 우파 독립운동가들을 옹립해 정계 개편과 과도정부 수립을 추진했다.

“해방 후 한국의 정치적 과제는 남북통일·독립국가의 건설이었으며, 일본 제국주의가 남긴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잔재를 일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군정은 구질서를 대변하는 쪽에 섰고, 반소·반공으로 나아갔다.

책은 미군정이 초기에 한국인들의 열망을 거스르며 구질서 유지와 반공으로 방향을 정립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준다. 미국은 한국에 대해 사전 연구나 준비, 계획도 없이 군정을 시작했다. 현지 사령관을 맡은 하지 중장은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고, 미국 국무부의 지도도 없었다. 이 공백을 해방으로 위기에 몰린 국내 친일 세력과 친미 세력이 파고 들었다. 미군정은 초기에 보수 우파 중심에 친일파도 섞인 한민당에 포획되고 말았다. 초기 미군정은 한민당, 주한 선교사 출신으로 미군정에 참여한 반공주의적 미국인들, 미국에서 유학한 국내 기독교계를 통치 파트너로 삼았다.

미군 진주 이후 처음 10여일 동안 24군단 정보참모부 일일보고서에 등장하는 주요 정보 제공자는 송진우, 김성수, 장덕수 등 한민당 지도부였다. 해방 정국 최고의 정치 지도자였던 여운형은 한 달 넘게 하지를 만날 수 없었다.

책은 미군정과 주요 권력기구의 인력 구성을 분석하면서 기독교계 인사와 연희전문 인사들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는 점도 알려준다. 언더우드 가족은 미군정기에 가장 활약한 선교사 집안이었다. 미군정기는 무엇보다 한민당의 세상이었다. 한민당은 고문회의를 비롯해 경찰, 사법부, 검찰 등을 장악했다.

미군정을 주도한 사람들 사이에 공유한 가치는 반공이었고, 친일은 그리 문제가 안 되었다. 반공은 친일 세력들의 생존 전략이기도 했다. 해방 공간을 창출했고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 좌파 세력은 미군정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미군정의 방향은 그렇게 당대 한국의 국가적, 민족적, 시대적 대의와 어긋나게 되었다.

미군정 초기 역사를 연구하면서 저자가 새로 발견해낸 사실들이 많다. 대표적인 게 미군정의 반탁(신탁통치 반대)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반탁운동이라고 하면 1945년 12월 27일자 동아일보의 신탁통치 보도 이후 시작된 김구 및 임시정부 세력 주도의 반탁운동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인공의 부정과 해체, 이승만과 임시정부를 활용한 정계 개편이라는 미군정 초기 정책이 우파 중심의 과도정부 수립 계획으로 이어지며 반탁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과도정부 계획은 이승만을 중심으로 진행된 ‘독립촉성중앙협의회(독촉중협)’로 현실화됐다. 하지만 김구 등이 여기에 합류하길 거부하면서 실패했다.

국제적 합의와 미국 정부 방침에 거슬러 과도정부와 반탁을 추진한 것은 당시 미군정이 이승만, 한민당과 얼마나 깊게 얽혀 있었는지를 알려주며, 결과적으로 한국 현대사의 방향을 결정지었다. 저자는 미군정이 1945년 10월부터 12월까지 맹렬하게 전개한 반탁 운동이나 9월부터 12월까지의 임시정부 중심 정국 개편 시도는 한국 현대사에서 거의 기억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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