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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노력 아닌 ‘국민이 낸 기금’으로 손실 줄이려는 한전

송·변전 설비 인근 주민 위한 보상
전력기금 활용하려는 작업 들어가
적자 이유, 정부 돈 쓰는 건 불합리

한국전력공사가 송·변전 설비 인근 지역 보상을 위한 재원을 자체 예산에서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으로 바꾸는 작업에 착수했다. 현재 한전은 법에 따라 매년 1000억원 이상을 송전망 주변 주민 보상금으로 지출하고 있는데, 이를 정부 재정으로 돌리겠다는 취지다. 서민 물가 안정을 명목으로 4분기 주택용 전기요금을 동결한 한전이 전 국민이 내는 기금을 활용해 손실을 막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전은 현재 ‘송·변전설비 주변 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송주법)’에 따라 해마다 약 1500억원을 송전선로 인근 주민에게 보상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47조원 적자를 안고 있는 한전은 이 돈을 전력기금에서 조달하는 방식으로 지출 규모를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지난해 기준 전력기금 규모는 약 6조5000억원이다.

한전은 지난 7월부터 여야 의원들을 접촉해 전력기금에서 보상금을 지출하는 내용의 법 개정을 설득해 왔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9월 이 내용을 담은 송주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양 의원은 개정안 제안 사유로 “송·변전 설비는 반도체 등 국가첨단산업을 촉진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지만 주민 반발로 인해 적기에 건설하지 못하고 있다”며 “전력기금을 사용해 주민 수용성을 높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전의 방침이 정부의 기금 운용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전력기금은 전기를 쓰는 모든 국민이 전기요금에 추가로 3.7%를 붙여 내야 하는 일종의 ‘준조세’로, 부담금으로 분류된다. 부담금은 특정 공익사업의 경비 충당을 위해 해당 사업과 이해관계가 있는 국민이나 기업에 부과한다. 송전망 주변 지역 주민에게만 돌아가는 혜택을 모든 전력 사용자가 부담하는 전력기금으로 충당하는 것은 부담금 원칙에 맞지 않는다.

전력기금은 2001년 당시 정부가 한전의 민영화를 추진하면서 도입했다. 공기업인 한전이 그동안 담당하던 전력 산업 발전 등에 구멍이 생기지 않게 한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문재인정부가 이 돈으로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지원하는 등 역대 정부는 전력기금을 쌈짓돈처럼 써 왔다.

전문가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상헌 국회 수석전문위원은 송주법 개정안 검토 보고서에서 “한전은 송·변전시설 설치를 통해 이익을 얻고 있는데 그로 인한 지원사업을 온전히 공적 영역의 역할로만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이어 “지금까지 한전은 송전선 주변 지원사업을 문제없이 수행해 왔다”며 “최근 2년간 전력판매 부문에서 적자가 났다는 이유로 지원 사업 비용을 정부가 부담하는 것은 비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

한전과 산업부는 올 4분기 주택용 전기요금을 동결하며 서민들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이 낸 돈으로 조성된 전력기금을 통해 손실을 줄이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는 비판도 있다.

세종=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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