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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기억에서 퍼올린 풍경… 닮은 듯 다른 두 화폭

겨울 화랑가 30·40 작가 전시 눈길


겨울 화랑가에 역량을 인정받은 30·40대 작가들의 개인전이 동시에 열리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올들어 1970년대 실험미술의 대가 등 80대 원로와 50·60대 중견 작가들의 전시가 많았다는 점에서 ‘미술계 허리’ 작가들의 전시는 신선한 활력을 주고 있다. 특히 개최 장소가 전시가 열리는 그 자체가 보증수표인 A급 사립미술관 혹은 갤러리라는 점에서 미술 애호가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먼저 회화에서는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하는 박광수(39) 작가의 개인전 ‘구리와 손’, 서울 성북구 성북로 BB&M갤러리에서 하는 미코 벨드캄프(41) 작가의 개인전 ‘고향에서 온 포스트카드’를 소개한다. 두 작가는 모두 각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맺은 작가다.

두 작가 모두 표현주의가 가미된 구상 회화를 한다는 점, 또 서사가 있는 풍경의 근원이 유년의 기억 등 개인사와 관련된 점 등에서 흡사하다.

박광수 개인전 ‘구리와 손’
박광수 작 ‘최초의 마음’. 2023년, 캔버스에 유채, 193.9×130.3㎝. 학고재갤러리 제공

박광수가 캔버스에 유화로 그린 풍경 속에는 늘 인물이 등장한다. 강렬한 원색으로 그린 풀과 나무, 길과 산, 평야와 강이 있는 풍경은 현실 같기도 하고 비현실 같기도 하다. 작가는 기성품 붓을 쓰지 않고 막대 끝에 스펀지를 붙인 ‘스펀지 펜’을 고안해서 쓰는데, 스펀지 펜이 지나가며 만들어내는 선은 마치 속이 텅 빈 파이프가 구불구불 지나간 자욱 같아 풍경화가 주는 비현실감을 고조시킨다.

서울과기대 조형예술과를 졸업한 박광수는 검은 숲으로 사라지는 사람의 뒷모습 등을 담은 흑백의 드로잉 회화로 독창적 세계를 구축하며 2016년 ‘금호미술관 영 아티스트’에 뽑혔다. 흑백으로만 그리던 그는 ‘내가 색을 쓴다면 어떤 색을 쓸까’ 궁금해 놀이 삼아 색을 써서 그렸다. 그러다 2021년 송은미술대상전 후보에 뽑혀 그룹전을 하면서 처음으로 색이 있는 이 시리즈를 세상에 공개했다. 흑백시대가 현실적 풍경을 사진을 찍어 참고해 그렸다면 칼라시대에는 실제의 풍경을 참고하지 않는다. 26일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작가는 자신의 상상 속 풍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제가 그리는 풍경은 산의 높이가 요만하다거나 평야가 어느 정도 펼쳐지다가 강이 나타나거나 나무가 빽빽하다가 어느 지점에서 느슨해지는 등 즐겨 그리는 지형의 패턴이 있어요. 그게 제 고향 풍경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상상이지만 완전한 상상은 아닌 거지요.”

박광수의 칼라 풍경화 연작에서 원시의 근원적 풍경이 상상으로 이뤄진 것은 그의 고향이 철원이어서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원은 옛날 화산이 폭발해 생겨난 독특한 지형을 갖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한탄강 주상절리에서 느껴지는 태고적 질감이 그런 상상력을 건드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림 속 인물들은 인류의 조상처럼 벌거벗은 채 뭔가를 줍거나, 뭔가를 그리는 등 한마디로 노동과 창작 행위를 한다. 그는 풍경을 분명하게 그리지 않는다. 모호하게 그려 여지를 남긴다. 예컨대 돌인지 구멍인지 분명하지 않아서 오히려 새로운 상상으로 이어질 여지를 남기는 식이다. 그래서 전시 제목이 ‘구리와 손’이다. 12월 9일까지.

미코 벨드캄프 개인전 ‘고향에서 온 포스트카드’
미코 벨드캄프 작 ‘밤 속으로’. 2023년, 캔버스에 유채와 아크릴, 101.5×152.5㎝. BB&M갤러리 제공

삼청동에서 삼청터널을 넘어가면 나오는 BB&M은 광주비엔날레 전시과장 출신의 제임스 리가 설립했다. 벨드캄프는 미국의 현대미술 큐레이터 댄 캐머런이 2022년 기획한 그룹전을 통해 같은 갤러리에서 국내에 얼굴을 내밀었고, 이번에 아시아 첫 개인전을 하게 된 것이다. 작가는 남미의 네덜란드령 수리남에서 인도네시아 이주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유년기 네덜란드로 이민 가 그곳에서 성장했고 현재는 뉴욕에서 ‘미국 작가’로 활동한다. 그만큼 정체성에 관심이 많다.

미코 벨드캄프 작 ‘클럽 열대’. 2023년, 린넨 위에 유채와 아크릴, 122×137㎝. BB&M갤러리 제공

‘기억과 트라우마 속을 다이빙한다’는 작가의 그림 속에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보낸 유년기와 청년기의 기억 속 풍경이 한 공간에서 조합된다. 그림 곳곳에 네덜란드의 상징적인 교통수단인 거리의 자전거, 열대의 나라 수리남에서 본 소와 야자수, 수영장, 오렌지색 땅, 차양막 등의 이미지가 작품 속에 얽혀 있다. 수영장 옆, 책이라는 문자의 나라에 누워 있는 나와 의자에 앉아 있는 문맹의 할머니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속 아담과 하나님처럼 서로 손을 잡은채 연결된 모습도 인상적이다. 설화 속 유령도 출몰해 따뜻하면서도 불안한, 그러면서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작품 속 작가의 분신 같은 남자는 늘 팔이 길게 늘려 있는데 이는 ‘역사에 의해 휘어진 몸’을 상징한다. 암스테르담 라익스아카데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2023년 ‘새로운 미국 회화’에 선정됐다. 12월 16일까지.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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