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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예산안·민생 법안 다 제쳐두고 맞붙기만 할 건가


여야가 예산안조정소위원회를 가동하며 657조 9000억원 규모의 2024년도 정부예산안 정밀 심사에 착수했다. 예산안 처리 법정기한인 다음달 2일까지는 3주도 남지 않았기에 국회에서 본격적인 예산 전쟁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야가 건설적인 토론을 거쳐 합리적으로 예산안을 처리할 가능성은 그다지 높지 않다. 말로는 민생을 챙기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지만 정작 행동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강성 지지층만 바라보며 총선에서의 유불리를 따지는 대치 정국이 계속된다면 예산안 늑장·졸속 처리는 물론이고 국회에 계류된 민생법안 대부분이 무산될 게 뻔하다.

그런데도 여야의 극한 대립은 진정되기는커녕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홍익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대장동 50억 클럽’ 등 특별검사 법안을 연말까지 기다리지 않고 정기국회 중에 처리하겠다고 13일 밝혔다. 최대 60일인 본회의 숙려기간을 힘으로 단축하겠다는 뜻이다. 민주당은 지난주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을 강행 처리했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및 현직 검사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이에 맞서 국민의힘은 탄핵소추 재추진을 막기 위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등 법적 투쟁에 나섰다. 거대 의석을 가진 야당은 대책없이 폭주하고, 국정에 무한책임을 져야 할 여당은 대화를 통한 정치적 해결 대신 현안을 법정으로 들고가고 있다. 여야가 서로를 비방하지 않기로 신사협정을 맺은 지 20일 만에 볼썽사나운 싸움이 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국회에 계류된 민생법안 처리는 줄줄이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이태원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한 재난안전법, 전세 대출금 이자를 제때 내지 못하는 서민을 위한 금융소비자보호법, 임금체불 해소를 위한 임금채권보장법, 난립한 정당 현수막을 규제하는 옥외광고물법 등 여야가 큰 이견을 보이지 않았던 각종 법안마저 소관 상임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다음달 9일 정기국회 폐회까지 본회의 일정은 2차례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마저 특검, 탄핵, 국정조사라는 핵폭탄급 정쟁에 막혀 정상적인 진행을 장담할 수 없다. 정기국회가 끝나면 여야 모두 일제히 총선에 뛰어들 것이니, 국회에 계류된 1만7000여건의 법안 대부분이 자동 폐기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국회의원의 직무유기인 것이다. 지금 국민들은 자신들의 대표자가 모인 국회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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