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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이준석식 인종차별

이동훈 논설위원


‘인종의 도가니(melting pot)’ 미국 사회는 차별의 뉘앙스만 풍겨도 난리가 날 정도로 긴장감의 연속이다. 경찰관이 사적 통화에서 ‘흑인이 싫다’고 발언한 사실이 공개되자 옷을 벗어야 할 정도다. 벌써 15년 전 흑인 대통령을 배출했으면서도 그 족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건 흑인 노예제도의 트라우마가 워낙 깊기 때문이다.

이런 인종차별 정책과 달리 우리와 다른 집단을 배척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지상정이다. 조선에서는 유럽 백인과 흑인을 각각 양귀(洋鬼), 해귀(海鬼)로 불렀다. 제주 해역에 표류했다 잡힌 네덜란드인 하멜은 ‘하멜 표류기’에 “조선인들은 우리를 괴물로 여겼다”라고 썼다. 그런데 조선의 조정이 그보다 26년 먼저 입국한 벨테브레이에게는 박연이란 조선 이름을 부여하고 관직까지 하사한 것을 보면 생김새로 사람을 차별한 것 같진 않다. 하멜은 통역을 위해 제주에 파견된 박연을 만난 뒤 “이 사람은 네덜란드인이 확실하다”고 했다. 이에 조선 관원들은 “아니다, 조선인이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자신을 끌어안기 위해 공개 토크쇼를 찾은 인요한(미국명 존 올더먼 린튼) 혁신위원장을 영어로 응대한 걸 두고 말들이 많다. 미 하버드대 출신인 그는 전남 순천 태생으로 특별귀화 1호인 인 위원장을 Mr.Linton이라 부르며 “우리의 일원이 됐지만, 현재로선 우리와 같아 보이지 않는다”며 조롱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 인종차별 비판이 일자 이 전 대표는 인 위원장이 (한국말의) 뉘앙스를 잘 몰라서 영어를 사용했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이를 보고 미국 예일대에 있는 나종호 정신과 교수까지 나섰다. 그는 페이스북에 “한국계 미국인 2세에게 한국계라는 이유로 미국의 유력 정치인이 공개석상에서 한국어로 이야기를, 그것도 비아냥대면서 했다면 그 사람은 인종차별로 그날로 퇴출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국말 소통으로도 모자라는 정치판에서 영어까지 동원돼 화합에 찬물을 끼얹는 추태를 지켜본 국민은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이동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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