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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블레츨리 파크

고세욱 논설위원


블레츨리 파크는 영국 남중부 버킹엄셔주의 블레츨리에 있는 사유지다. 이곳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암호 해독의 중심지가 되며 명성을 얻는다. 영국 정부는 전운이 감돌던 1938년 블레츨리 파크에 정부암호학교(GC&CS)를 세웠고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과 체스 챔피언, 낱말 풀이 전문가 등 괴짜 수재들을 모았다. 이들은 이곳에서 독일의 암호 체계인 에니그마를 해독해 연합군이 전세를 뒤집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이를 다룬 영화가 2014년 개봉된 ‘이미테이션 게임’이다.

튜링 등은 1944년 암호 해독을 돕기 위한 자동 기계인 ‘콜로소스’를 개발했는데 이는 세계 최초의 디지털 전자 컴퓨터다. 그래서 블레츨리 파크는 현대 컴퓨터의 성지로도 불린다. 암호해독 작전은 1946년에 끝났지만 한동안 비밀은 계속 유지됐다. 영국의 세계적 추리소설가 애거서 크리스티가 1941년 펴낸 작품 ‘N 또는 M’에 블레츨리라는 인물이 나오자 기밀이 샌 줄 알고 놀란 영국 정보기관이 크리스티를 은밀히 조사했다는 일화도 있다.

2차 세계대전의 경험을 바탕으로 영국은 사이버 보안 선도국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현재 ‘사이버 보안 챌린지’라는 대회를 열어 우승자를 국립 사이버보안 대학에서 채용토록 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는데 이 학교가 위치한 곳이 블레츨리 파크다. 블레츨리 파크에서 운영 중인 컴퓨터 박물관은 2020년 코로나19로 타격을 받아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었지만 컴퓨터공학의 산실이나 마찬가지인 이곳을 지켜야 한다며 페이스북(현 메타)이 100만 파운드(약 16억원)를 기부하기도 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블레츨리 파크에서 제1회 인공지능(AI) 안전 정상회의가 열려 AI가 초래하는 위험을 막자는 ‘블레츨리 선언’이 채택됐다. 튜링은 종전 후인 1950년 ‘튜링 테스트’를 통해 AI의 개념을 처음 세상에 선보였다. ‘AI의 아버지’ 튜링이 활약했던 블레츨리 파크에서 AI에 관한 규제와 혁신 사이의 균형을 모색하는 회의가 열렸다. 역사의 오묘함을 느끼게 한다.

고세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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