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어둠 밝힌 고마운 빛, 너무 밝아 무서운 빛

서울 서초구 주택가에서 지난달 21일 빛공해 환경영향평가 자료 수집을 위해 조도를 측정하는 모습. 조도는 물체의 표면에 들어오는 빛의 양으로 주거지의 창이나 거실 등에서 측정한다. 빛공해 조사를 위해선 조도와 휘도 측정이 필요하다.

“국가대표 경기도 안 봐요. 축구라고 하면 아주 징글징글합니다.”

지난 17일 찾아간 충북 청주 시내의 한 아파트 거실. 주변 풋살장 야간조명의 불빛으로 인해 밤에도 환하다.

충북 청주의 한 아파트에 사는 민종명씨는 “수면제 없이는 잠을 못 이룬다”며 인근 풋살장 빛공해에 따른 고통을 호소했다. 지난 8월 개장한 풋살장은 민씨의 삶을 헤집어 놓았다. 한밤에도 집 거실이 대낮처럼 환해 불면증은 물론 우울증까지 생겼다고 한다.

충북 청주 시내 한 아파트 외벽에 지난 17일 풋살장으로 인한 빛공해를 호소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빛은 어둠을 밝혀주는 고마운 존재다. 휘황찬란한 네온사인과 꺼지지 않는 조명은 도시 발전과 번영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기 마련. 과도한 인공조명은 많은 문제를 낳았다. 이제는 공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규제에 나서고 있다.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동식물은 낮과 밤의 일정한 주기에 따라 살아간다. 인간은 낮에 활동하고 밤에는 잠자는 리듬으로 건강을 유지한다. 이 같은 생체 리듬이 깨지면 불면증뿐 아니라 면역체계 이상으로 우울증, 비만, 당뇨 등의 문제가 생긴다. 2007년 세계보건기구(WTO) 산하 국제암연구기구는 ‘야간교대근무’를 2급 발암요인으로 분류하며 간접적으로 빛공해를 발암물질로 인정했다.

서울 강남구 번화가 상점에 실치된 광고판 조명이 지난 19일 밝은 빛을 내고 있다.

빛공해가 사람에게만 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동식물과 곤충은 과다한 빛으로 인해 밤낮을 구분 못하게 되고 이는 생식과 성장을 방해해 생태계를 교란한다. 알에서 부화한 바다거북이는 바다로 가야 하지만, 강한 도시 불빛으로 인해 육지로 올라가 죽음을 맞는다. 철새들이 밤하늘에 비친 인공조명 때문에 방향감각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가는 것도 널리 알려진 사례다. 식물의 수분을 돕는 나비, 벌 등에 영향을 줘 열매 맺음을 방해하기도 한다. 따라서 빛공해 규제는 주거지에 한정되지 않는다. 오히려 논, 밭 등 생산녹지나 공원녹지에 더 높은 수준의 규제가 이뤄진다.

2014년 국제공동연구팀이 조사한 세계 빛공해 실태에서 한국은 세계 2위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빛공해 지역이 전체 국토의 89.4%를 차지해 이탈리아(90.4%)에 이어 2위에 오른 것이다. 환경부와 지자체는 2014년 인공조명에 의한 빛공해 방지법을 시행해 빛공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서울시 빛환경 조감도. 미국 NASA 홈페이지에서 캡처했다.

빛공해를 줄이려면 주변 환경과 목적에 맞게 방향, 강도, 범위를 고려해 조명을 설계해야 한다. 불필요한 곳으로 빛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각도를 조절하고 가리개를 사용해야 한다. 다음으로 효율적인 조명기구를 사용해야 한다. 나트륨등 대신 빛공해가 적은 LED등을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외부 간판의 광량을 제한하거나 일정 시간 이후 소등을 유도하는 규제도 필요하다. 서울시는 빛공해 개선사업을 꾸준히 실시한 결과 환경부가 실시하는 시·도 빛공해 방지 업무 추진 실적 평가에서 2019~2021년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서울시 이관호 도시경관 담당관은 “실질적인 빛공해 저감을 위해 보안등과 가로등의 광원을 LED로 교체 중이며, 간판개선사업도 지속해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양한 공모전을 통하여 시민들에게 빛공해의 심각성을 홍보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da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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