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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돌아온 빈대

라동철 논설위원


빈대는 납작한 타원형 몸통에 다리가 6개 달린, 몸길이 6~9㎜가량의 작은 곤충이다. 모기, 이, 벼룩과 마찬가지로 포유동물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 해충이다. 주로 동굴 속에서 박쥐에 기생해 오다 인류가 번성한 후에는 사람까지 숙주로 삼아 살아가고 있다. 낮에는 가구 이음새나 벽 틈 등 좁고 어두운 곳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기어 나와 사람의 살갗에 주둥이를 박고 피를 빤다. 모기나 벼룩처럼 병원균을 옮기지는 않지만 물린 자리가 잘 아물지 않고 손톱으로 박박 긁을 정도로 무척 가려워 인간에게 성가신 존재다. 모기는 여름철에 주로 활동하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사라지지만 빈대는 사시사철을 가리지 않고 활동하는 데다 번식력이 왕성하고 생명력도 바퀴벌레에 버금갈 정도로 질기다. 오죽하면 ‘집이 타도 빈대 죽으니 좋다’는 속담이 생겼을까.

‘빈대도 낯짝이 있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등 빈대를 빗댄 속담이 여럿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빈대는 과거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였다. 하지만 1970년대 DDT 등 강력한 살충제를 살포해 박멸에 나서고 주거 환경도 개선되면서 토종 빈대는 80년대 후반 이후 거의 자취를 감췄다. 2009년 1월 한 언론사가 서울의 공동주택에서 빈대가 발견돼 기생충학회에 보고된 사실을 취재해 ‘20여년 만에 서울서 빈대 발견’이란 제목으로 소식을 전했을 정도였다.

오랫동안 잊히다시피 했던 빈대가 다시 우리의 일상생활 깊숙이 찾아왔다. 얼마 전 인천의 한 사우나 찜질방 매트 밑에서 빈대 성충과 유충이 다수 발견돼 찜질방 운영을 중단하고 소독 작업을 해야 했다. 주택은 물론 호텔, 모텔 등 숙박시설에서도 출몰하고 있다. 방역업체에 따르면 2000년대 후반 이후 빈대 발견 건수가 증가하는 추세다. 토종 빈대는 사라졌지만 빈대가 기승을 부리는 나라들과의 인적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외래종 유입이 늘어난 탓이다. 동시다발 전쟁, 글로벌 불황, 정치·사회적 갈등 고조 등으로 인해 심란한데 이젠 빈대 걱정까지 하게 됐다.

라동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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