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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 살아 있는 동안 기부하는 것

한승주 논설위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와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이 ‘기부 롤 모델’로 꼽은 인물이 있다. 세계 최대 글로벌 면세점 업체 DFS를 창립한 찰스 척 피니다. 그는 1982년 자선재단을 설립해 평생에 걸쳐 재산 80억 달러(약 10조7000억원)를 기부했다. 이들이 피니를 롤 모델로 삼은 이유가 있다. 사후가 아닌 생전에, 꾸준히, 익명으로, 전 재산의 99%를 기부했기 때문이다. 지난 9일(현지시간)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그의 삶이 다시 조명되고 있다.

그는 자신의 전기 ‘살아있는 동안 기부하는 것’에서 “살아있는 동안 기부를 해보면 당신도 좋아할 것”이라며 “죽었을 때 기부하는 것보다 살아있는 동안 기부하는 것이 훨씬 더 재미있다”고 말했다. 2020년 기부를 마무리한 후 재단을 해체할 때는 “빈털터리가 됐지만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 해 봐라, 정말 좋다”고 했다.

물려받은 재산 없이 자수성가한 피니는 남모르게 기부하는 것을 즐겼다. 자선재단을 통해 대학·병원·미술관·도서관 등에 기부했는데 익명이나 가명을 썼다. 기부 사실을 감추다 보니 한번은 미국 경제지에서 뽑은 ‘돈만 아는 억만장자 1위’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97년 면세점 매각 과정에서 회계장부가 공개되며 15년 동안 4조5000억원이나 기부했다는 사실이 강제로 세상에 알려졌다. 미국뿐 아니라 5개 대륙 1000여개 단체에 기부를 했지만 정체를 밝히지 않아 그의 이름이 새겨진 건물은 없다. 억만장자였지만 삶은 한없이 검소했다. 생의 마지막 순간 아내와 함께 머물던 집은 방 두 칸짜리 소형 임대 아파트였다. 2만원짜리 손목시계만 차고 다녔다.

세상에는 액수의 크고 작음을 떠나 힘든 일을 하며 어렵게 모은 돈을 선뜻 내놓는 사람이 많다.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살만하다. 다 쓰지도 못할 돈에 과한 욕심내지 않고, 가족을 위해 적당한 재산만 남기고, 살아있을 때 대부분을 기부하는 일은 멋지다. 이들이 기부로 인해 세상이 바뀌는 걸 경험하며 즐거워했을 것을 상상하니 정말 부럽다.

한승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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