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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하루키와 한국

김남중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지난달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가 시작됐고 한국에서는 일본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 속을 뚫고 하루키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5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서점에 깔렸고, 이 책은 출간 전 예약판매가 시작된 순간부터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새 소설 출간에 맞춰 9월 내내 하루키 이벤트가 열린다. 팝업스토어 ‘무라카미 하루키 스테이션’이 개장됐고, 책 전시회 ‘하루키의 서재’가 조만간 시작된다. 유명인들이 하루키에 대해 얘기하는 오디오클립 ‘하루키 없는 하루키 라디오’도 공개되고 있다. 다음 달에는 노벨문학상 시상식도 있다. 10월 5일 수상자가 발표되는데 하루키는 현재 베팅사이트에서 1위 후보에 올라 있다. 하루키가 수상을 한다면 하루키 바람은 10월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루키는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외국 작가다. 문학동네에 따르면 하루키의 전작 장편 ‘기사단장 죽이기’(전2권)와 ‘1Q84’(전3권)를 합해 총 270만부가 판매됐다. 그래서 하루키가 한 번도 한국을 방문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가장 가까운 옆 나라, 일본을 제외하면 하루키 책이 제일 많이 팔리는 나라, 1989년 ‘상실의 시대’ 출간 이후 30년 넘게 변함없이 하루키를 사랑해온 나라, 그런 나라를 방문하지 않는 이유란 게 대체 무엇일까. 2017년 ‘기사단장 죽이기’ 한국어판 출간 당시 문학동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하루키는 한국을 방문할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언젠가 그런 기회가 생기면 좋겠습니다만, 사실 저는 공적인 행사를 썩 좋아하지 않고 미디어에 출연하는 일도 거의 없기에 아무래도 결국 이런 초대를 사양하게 됩니다.”

2008년 하와이에서 가진 패션잡지 ‘GQ’ 한국판 인터뷰에서는 한국 독자들에 대한 생각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일본을 벗어나 제 소설에 첫 번째로 관심을 보여 준 게 한국, 한국의 독자예요. 그런 의미에서 제게 한국의 독자는 매우 특별해요.” “매우 특별”하다는 한국 독자들을 만나는 일이 왜 그토록 어려울까. 하루키는 “한국에 꼭 가보고 싶지만, 아무도 모르게 가고 싶습니다”라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가지 않은 건 절대 아니고 웬일인지 갈 기회가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이유예요”라고 말할 뿐이다.

하루키가 노출을 꺼린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난 7월 세상을 떠난 밀란 쿤데라처럼 수십년간 완벽하게 은둔한 작가는 아니다. 간간이 국내외에서 인터뷰하고, 해외 문학상 시상식이나 작가축제에 참석해 연설한다. 지난 6월에는 미국 웰즐리대에서 객원교수 프로그램에 초대받아 간담회를 가졌다. 2021년엔 일본 와세다대의 ‘무라카미 도서관’ 개관 기념으로 기자회견을 했다. 2018년부터는 도쿄 FM에서 ‘무라카미 라디오’를 진행하고 있다.

그간 국내에서 하루키를 초청하려는 시도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출판사들이 꾸준히 방한을 타진했고, 대산문화재단에서도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초청하려 여러 번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하루키는 응하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키가 한국은 물론 아시아 지역에 관심이 없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한다. 그가 일본을 제외하고 아시아 국가 행사에 참석한 사례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하루키의 글이나 발언에서 아시아를 무시한다는 증거를 발견할 순 없다.

하루키 바람이 또 불면서 ‘하루키는 왜 한국에 안 오는가?’라는 오래된 의문도 다시 떠올리게 된다. 이 의문은 ‘하루키는 왜 노벨상을 못 받는가?’라는 의문과 함께 하루키를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요소일 것이다.

김남중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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