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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열며] 분노 유발자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교차로에서 종종 꼬리물기를 만난다. ‘저렇게 꼬리를 물고 있는데 더 복잡해지진 않겠지’라는 기대는 쉽게 무너진다. 누군가는 참지 못하고 경적을 거칠게, 때로는 길게 울린다. 꼬리를 물지 않으려 교차로에 진입하지 않아도 어딘가에서 울리는 경음기 소리를 듣게 된다. 누가 들어도 짜증이 섞였다고 느껴지는 경음기 소리와 상황은 주변 운전자뿐만 아니라 보행자에게도 짜증과 화를 옮긴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채 갑자기 끼어드는 진출입로의 새치기도 분노를 유발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의 엽기적인 행각들은 차치하고 빈자리가 보이면 먼저 타려는 사람, 배낭 같은 큰 가방을 멘 채 좌우로 돌며 미안한 기색도 없이 이동하는 사람들도 다른 사람에게 인내를 강요한다. 지난주 금요일에 탄 버스에선 30여분간 계속 통화하는, 양복에 넥타이까지 갖춰 맨 흰머리의 아저씨가 불편했다. 버스 안에서의 통화가 부적절한지는 아는지 나름 입을 가리긴 했지만 서울 용산에 있는 행정부 고위직 인사의 이름을 들먹이는 대화 내용은 듣고 싶지 않아도 귀에 들어왔다. 불편이 화로 변하기 직전 흰머리 아저씨는 하차했다. 여전히 통화 중인 상태였다.

직장생활도 다르지 않다. 업적 가로채기, 편 먹기, 줄서기와 위선으로 얻어내는 승진, 비겁하고 무능한 간부와 동료 때문에 받는 피해 등에서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나라라도 잘 돌아가면 좋겠는데 난망이다. 청백리는 없다시피 하다. 책임 가진 사람은 책임지지 않고, 실책은 적당한 선에서 꼬리 자르기로 무마하려 한다. 지도층의 반칙, 특권으로 얻는 이익, 이중 잣대, 위선, 거짓말, 모르쇠, 뻔뻔함, 잡아떼기, 남 탓 등은 일상이다. 정치인은 국민을 위하기는커녕 사익을 공익으로 포장하고 사심을 충족하기 위한 이전투구에만 몰두하는 모양새다. 편 가르기만 있고 관용과 배려, 타협은 없다. 부끄러움도 없다.

모두 국민에게 스트레스와 분노를 주고, 생활에도 영향을 끼친다. 이웃을 존중하지 않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 내 갈 길만 빨리 가면 되고, 나와 내 편만 잘되면 된다는 심리로 작용하고 실제 행동으로도 나타난다. 개인 성향에 따라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경쟁이 싫어 은둔하는 사람도 생긴다. 쌓인 분노를 관리하지 못해 발생하는 사회적 폐해는 너무 크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2020년 내놓은 ‘분노조절 장애 진료실 인원 현황’에서 2015년 1721명이던 분노조절 장애 진료 환자는 2019년 2249명으로 늘었다. 30.7% 증가한 셈이다.

갤럽이 지난해 발표한 ‘100개 국가별 감정 보고서’에는 한국인의 38%가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이 조사의 질문은 ‘오늘 하루 어땠냐, 느낀 감정은 뭐냐’다. 걱정은 36%, 고통은 26%, 분노는 18%, 슬픔은 17%의 사람들이 느꼈다고 답했다. 100개 국가 가운데 중간 정도 순위다. 정중한 대우를 받았느냐는 질문에는 70%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순위로는 끝에서 5번째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95개 국가 사람들보다 정중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분노를 유발하는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개인 성향도 있지만 대체로 불공정, 경쟁 지상주의, 경제적 양극화와 박탈감 등 사회적 요인을 꼽는 전문가들이 많다. 인내와 용서, 중립적 사고, 상담 등으로 개인적 분노는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사회적 분노는 인내와 용서로 해결되지 않는다. 정책 책임자들의 사과와 반성, 대다수 국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대책 등이 수반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주권을 가진 국민이 나선다. 현대사의 중요한 분기점들은 국민이 만들었다.

전재우 사회2부 선임기자 jw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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