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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영화산업의 진흥과 관객수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2023년 6월 13일 경찰은 멀티플렉스 영화관 3곳, 배급사 3곳을 압수수색했다. 자체 첩보로 관객수 조작 정황을 인지해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 업무방해 혐의 수사에 나선 것이다. 두 달여 수사 끝에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와 영화 배급사 24곳 관계자 69명을 7월 14일 검찰에 송치했다. 이에 지난 20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박기용 영진위 위원장에게 신뢰 회복을 위한 다각적 대책을 주문했다. 조작, 강제수사, 업무방해, 검찰, 송치와 같은 낯선 법률용어가 영화계를 휩쓸며 ‘밀수’ ‘콘트리트 유토피아’의 흥행으로 다시 뜨거워지던 한국 영화계는 한껏 위축된 분위기다.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제39조에는 ‘영화상영관입장권 통합전산망’ 운영 업무가 명기돼 있다. 이에 따르면 영진위는 통합전산망 운영 주체로서 ‘관객수와 그 밖의 영화상영관에 관한 사항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중요한 건 ‘관객수’라는 부분이다. 실제 우리나라 박스오피스는 관객수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관객수 기준으로 역대 흥행 1위 한국 영화는 1700만 관객을 넘긴 2014년작 ‘명량’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매출액을 기준으로 바꾸면 2019년 ‘극한직업’이 높다. 관객수는 ‘명량’이 많지만, 매출액으로 따지자면 ‘극한직업’이 훨씬 흥행한 영화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문은 흥행이란 무엇인가로 바뀐다. 많은 사람이 본 영화냐 아니면 매출액이 높은 영화냐, 그 기준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프랑스 등을 제외하고 대개 박스오피스는 매출액 기준으로 산정된다. 할리우드 개봉 영화 소식을 접할 때 개봉 첫 주 매출액 기사로 전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국, 독일, 일본의 박스오피스도 모두 매출액을 기준 삼는다. 주목해야 할 건 우리 사회에 관객수가 이미 영화 흥행의 사회적 지표로 확고히 자리잡았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선 ‘천만 영화’가 곧 흥행 영화다. 이런 한국적 특수성은 1998년 이후 등장한 멀티플렉스와 무관하지 않다. CGV 강변을 시작으로 멀티플렉스는 집약적 스크린과 상영횟수를 제공해 짧은 시간 많은 관객을 동원하는 한국형 흥행 구조를 마련했다. 박리다매를 기본으로 한 N차 관람 등의 영화 소비 형태는 한국 영화 산업의 특수성으로 자리잡았고, 이 과정에서 스크린 독과점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번 사태를 두고 영화계는 ‘업계 관행’에 대한 몰이해라고 의아해한다. 지난 5년간의 개봉작 426편 중 323편에서 혐의가 발견됐다는 점은 이를 방증하기도 한다. 주목해야 할 건 한국 영화의 업계 관행이라는 게 사회적 산물이라는 점이다. ‘천만 영화’라는 수식어는 언론의 발명품이기도 하다. 흥행 성공을 관객수로 가시화하고 대서특필하며 경쟁적으로 보도에 나섰던 언론 역시 업계 관행의 일부였다. 그러나 관행은 구조적 모순이자 적폐로 읽힐 수도 있다. 관행이야말로 그 사회 모순의 집약체이기도 하니 말이다.

가장 중요한 건 관객수 조작이 영화 소비자의 선택에 그다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역설적이게도 수사의 계기가 된 의혹의 작품들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실관람평이나 입소문을 더 신뢰하는 한국 관객의 까다로움은 고작 부풀린 관객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문제는 426편의 개봉 영화 중 대부분인 323편에서 혐의가 발견된 만큼 한국영화산업 종사자 다수가 검찰 수사 대상이 됐다는 사실이다. 더불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축감을 호소하는 불안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영진위가 통합전산망을 운영했던 애초의 이유는 바로 영화산업의 진흥을 위해서다. 본말이 전도돼 영화계에 위축감이나 불안감을 줘선 안 될 일이다.

강유정 강남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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